놀자, 사람이랑

미안하다, 꽃들아

칠부능선 2014. 5. 2. 14:20

 

 

"세월호 추모시 한편 얼른 써 주세요."

급한 부탁에

가슴에 있던 말이라 줄줄이 쓰긴 했다.

밤에 야탑역 광장에 나가보니 제법 쌀랑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앉아있다.

마련된 분향소에 헌화도 하고, 낭송하는 것을 보고 왔다.

중간 중간 노래도 하고,

갸륵한 추모의 마음들이다.

정치는 3류라도 시민정신은 1류다.

 

 

                   

 

                                                  

미안하다, 꽃들아 

노정숙

 

 

환한 봄날,

생명이 피어나는 4월

꽃 중에 꽃, 귀하고 어린 꽃

바다에서 꺾였네

 

 

눈물샘 한없이 열리고

발을 구르며 가슴을 쳐봐도 꽃들,

한 송이 건지지 못하고 바다에 잠들었다

그러고도 우리는 숨을 쉰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하늘도 본다

울분만으로 어쩌지 못하는 건

이 땅에 두발 디딘 산 자의 비애

 

미안하다

미안하다 꽃들아,

지순한 꽃들아, 죄 없어 크나큰 제물이 되었구나

무엇을 더 바라는가

목숨보다 귀한 것이 무엇인가

기어이 꽃봉오리 무더기로 바치고서야 보는구나

몽매해서 미안하다

파렴치해서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부디 용서하지 마라

생명 아닌 것을 섬기는 못난 인간들을

 

아직 피지 못한 꽃들아,

공포와 고통의 시간을 잊고

천상안식에 이르길 바라는 마음마저 송구하다

갈갈이 찢긴 꽃잎에 비통을 새긴다

이 참담과

이 분노가 힘이 되게 빌어다오

피멍으로 남긴 네 향기 오래오래 기억하마

 

 

 

 낭독 :이혜민

 

 

 

 

 

'놀자, 사람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 그대와  (0) 2014.05.11
그대, 잘가라  (0) 2014.05.09
작은 꽃  (0) 2014.04.23
미안하다  (0) 2014.04.20
책치 - 정치  (0) 201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