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순간을 소묘하는 80편의 아포리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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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세련된 언어와 필치로 그려낸 에세이집. 에세이스트이자 시인인 노정숙이 지난 십 년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간추려 '아포리즘 에세이'로 엮은 것이다. 작가는 산문시를 연상케 하는 80편의 짧은 글 속에 그의 눈에 담겼던 세상의 다양한 표정들과 시적 전율의 순간을 적절히 배합해 녹여낸다.
각각의 글은 원고지 2매를 넘지 않을 정도로 짧지만 그 여운은 옛날 앨범을 천천히 넘기고 난 뒤의 느낌처럼 길고 아득하다. 기교나 꾸밈없이 진솔하게 벼려낸 문장은 이분쉼표로 부는 9월 저녁의 바람을 닮았다. 세상을 관조하는 따뜻하고 웅숭깊은 작가의 시선이 본문에 함께 곁들인 마흔 컷의 모노톤 사진들로 더욱 빛을 발한다.
각각의 글은 원고지 2매를 넘지 않을 정도로 짧지만 그 여운은 옛날 앨범을 천천히 넘기고 난 뒤의 느낌처럼 길고 아득하다. 기교나 꾸밈없이 진솔하게 벼려낸 문장은 이분쉼표로 부는 9월 저녁의 바람을 닮았다. 세상을 관조하는 따뜻하고 웅숭깊은 작가의 시선이 본문에 함께 곁들인 마흔 컷의 모노톤 사진들로 더욱 빛을 발한다.
1부 바람의 편력
갠지스 강가에서 | 홍매는 동주를 보았네 | 아란, 국경에서 | 그 침대 | 늑대, 제 피를 마시다 | 타슈켄트, 그 농장 | 눈물 표지판 | 템플스테이 | 누운 자에게 말 걸기 | 데카브리스트 기념관 | 파타야 코끼리 | 겨울 채비 | 필연 | 중산간도로 한가운데서 | 신세계 | 시인의 집 | 바람 벌판 | 새대가리의 거룩한 소견
2부 미안한 사랑
종 | 늑대가 사라졌다 | 박꽃 | 희망고문 | 겨울산 | 꽃뱀 | 백 년 치의 사랑 | 파리지옥 | 확실이 | 낮술 | A4 용지 | 치명적 사랑 | 신발 | 그 사람 | 가로등 | 겨울, 기억 속으로
3부 백년학생
지저스, 지저스 | 모시풀 | 빨래의 꿈 | 소금 | 고물들 | 시간 | 해오라비난초 | 광장의 촛불 | 실족 | 배운다 | 대포항 | 불협화음 | 늑대를 위하여 | 꽃들, 전시장에서 만나다 | 오늘 | 경의를 표함 | 나무 | 冊, 울다 | 잡설 | 정말이야 | 오래된 수필론 | 밟아주세요
4부 사람 풍경
재미나는 인생 | 백구두 | 다비 | 장삼에 대한 기억 | 여름 | 시차 20년 | 텃밭 | 집 | 외할머니의 왼손 | 목련과 춘자 | 노인은 나의 미래 | 딸에게 | 골목길 | 해바라기 하나 | 양순이 | 아들에게 | 첫사랑 | 천년살이 | 결혼식장에서 | 모든 죽음은 타살성이 있다 | 견딜 수 없네 | 몸, 지다 | 나를 받아주세요 | 그 집 앞
작가의 말
- 저자 : 노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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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바람>,<사람, 사랑 사랑>,<나는 수필가다> … 총 6종 (모두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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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사람이 좋아서 시와 수필 밭에서 함께 놀고 있다. 인연과 염치를 귀히 여기며 여행, 요거트아이스크림, 벌개미취, 지금을 좋아한다. 에세이집 《흐름》, 《사막에서는 바람이 보인다》를 출간했고, 제5회 한국산문작가상을 수상했다. 2013년 현재 시인회의, 분당수필 동인, 계간 《현대수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바람은 찢긴 깃발을 흔들어 정지된 풍경을 깨운다……”
일상의 순간을 소묘하는 80편의 아포리즘 에세이 《바람, 바람》
여름내 푸르렀던 나무가 하나둘 옷을 벗으며 떠날 채비를 하는 이 계절,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세련된 언어와 필치로 그려낸 에세이집 《바람, 바람》이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이자 시인인 노정숙 씨가 지난 십 년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간추려 ‘아포리즘 에세이’로 엮은 것이다. 작가는 산문시를 연상케 하는 80편의 짧은 글 속에 그의 눈에 담겼던 세상의 다양한 표정들과 시적 전율의 순간을 적절히 배합해 녹여낸다. 각각의 글은 원고지 2매를 넘지 않을 정도로 짧지만 그 여운은 옛날 앨범을 천천히 넘기고 난 뒤의 느낌처럼 길고 아득하다. 기교나 꾸밈없이 진솔하게 벼려낸 문장은 이분쉼표로 부는 9월 저녁의 바람을 닮았다. 세상을 관조하는 따뜻하고 웅숭깊은 작가의 시선이 본문에 함께 곁들인 마흔 컷의 모노톤 사진들로 더욱 빛을 발한다.
‘바람의 편력’에서 ‘사람 풍경’에 이르기까지
지친 영혼을 위한 위로와 치유, 성찰의 에세이
작가는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세상과 사람,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화해, 위로와 치유의 풍경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언어로 재현해낸다.
1부 ‘바람의 편력’은 여행과 방랑의 장이다. 작가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인도, 유럽 등지로 떠났던 자신의 여행 경험을 모티프로 쓴 글들에서 우리 일상의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다. 그의 글에서 여정의 서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바람도 쉬었다 가는 그곳에서, 몸이 경험하고 영혼이 바라본 진실한 삶의 표정이다.
2부 ‘미안하다, 사랑’은 인연과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장이다. 어느 날 뜨거운 프라이팬에 살짝 스친 그는 3도 화상의 진단을 받고 오래전 아주 잠시 스쳤던 ‘그 사람’을 떠올린다. 문득문득 치미는 통증처럼, 슬쩍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근질거리는 검붉은 화인火印이 되어버린 어떤 ‘사랑’에 대해 누군들 다른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미안한 사랑’이라는 표현이 그리움의 옷을 채 입혀주지 못한 인연의 다른 말임을 깨닫게 한다.
살짝 스친 프라이팬은 시침 뚝 떼고 있는데 내 왼팔 안쪽은 붉게 달아오르네.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도 진물이 질기게 흐르네. 더께 아래서 웅성이는 아우성, 의사는 너덜거리는 더께를 젖은 솜뭉치로 사정없이 밀어붙이며 3도 화상이란다.
아, 오래전 깊이 덴 흉터 하나 근질거리네. 볕바른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여지없이, 취한 날이나 취하지 않은 날이나 문득문득 들썩이는 흔적. 아무튼 그도 슬쩍 스치기만 했는데 염치없이 깊이 새겨진 검붉은 화인花印.
_'그 사람', 64쪽
3부 ‘백년학생’은 인생의 경이로움과 희열의 장이다. 작가에 의하면 인생의 경이로움이란 대단한 일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매주 목요일마다 서는 동네 장에서 자기가 고른 채소를 ‘퇴짜’ 놓고 알아서 좋은 녀석들로 바꿔 넣어주는 장사꾼의 모습에서 기막힌 상술보다 당당한 삶의 자세를 배웠다고 고백한다. 또한 지갑에 참을 인忍 자 석 자를 넣고 다닌다는 보일러공 시인 이면우에게서는 인내하는 삶의 경건함을 일깨우고, 20년째 사용하고 있는 세탁기를 보면서는 귀물이 되지 못한 고물들끼리 눈 맞추며 수럭수럭 사는 일상의 평화로움을 우리에게 넌지시 제안한다.
또 퇴짜를 맞았다.
내가 고른 통통하고 길쭉한 열무와 얼갈이가 내려지고 흰 띠를 두른 일산열무라는 것으로 올려졌다. 5백원씩 더 비싼 것이란다. 빗어놓은 머리채같이 고무줄로 챙챙 묶은 단정한 달래도 휙 던져지고, 산발한 달래 다발이 담긴다. 오늘은 돌미나리가 맛나다며 내 얼굴 한번 쳐다보고 쓱 담는다.
매주 목요일마다 서는 동네 장에서 내가 골라놓은 것을 팅팅 퇴짜 놓고 장사꾼 맘대로 다른 것을 집어넣는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긴 설명을 하더니, 요즘은 간단하게 끝낸다.
기막힌 상술보다 저 당당한 자세를 배운 값으로 나는 말없이 계산을 치른다.
_'배운다', 85쪽
4부 ‘사람 풍경’은 과거와 미래, 추억과 희망의 장이다. 작가는 설화와 편지, 또는 유서의 형식으로 자신을 비롯한 가족, 이웃들의 이야기를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어릴 적 집에 자주 찾아왔던 방물장사 이야기부터 집을 나서면 몇 달 만에 돌아오곤 했던 아버지의 백구두, 해바라기 같은 신림9동의 고시생 청년, 이혼하고 족두리 쓰는 재미로 평생을 살았다는 아흔이 넘은 고모, 생의 저물녘에 있는 노인의 다소 비장하면서도 욕망에 초연한 듯한 이야기까지 찬찬히 읽어내리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레 한 인간의 생에 새겨지는 기억과 상처의 무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이 모든 인연이 ‘나를 키웠다’고 말한다. 바람이 찢긴 깃발을 흔들어 정지된 풍경을 깨우듯이, 아프고 괴로운 순간마저도 우리 삶에 고유한 빛깔을 만드는 소중한 시간임을 잊지 말자는 뜻일 게다.
곳곳의 바람은 서늘하면서도 달큼했다.
바람의 어깨에 기대 바람을 품고 벼린 날들의 기록이다.
피와 땀이 수런거리고, 무릎과 무릎이 가까워진다.
부대끼어 쓰리고 아파도 멋쩍게 웃는 것이 내 지병임을 알았다.
모든 인연이 고맙다. 그들은 나를 이렇게 키웠다.
자주, 운이 좋았다.
_‘작가의 말’에서
일상의 순간을 소묘하는 80편의 아포리즘 에세이 《바람, 바람》
여름내 푸르렀던 나무가 하나둘 옷을 벗으며 떠날 채비를 하는 이 계절,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세련된 언어와 필치로 그려낸 에세이집 《바람, 바람》이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이자 시인인 노정숙 씨가 지난 십 년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간추려 ‘아포리즘 에세이’로 엮은 것이다. 작가는 산문시를 연상케 하는 80편의 짧은 글 속에 그의 눈에 담겼던 세상의 다양한 표정들과 시적 전율의 순간을 적절히 배합해 녹여낸다. 각각의 글은 원고지 2매를 넘지 않을 정도로 짧지만 그 여운은 옛날 앨범을 천천히 넘기고 난 뒤의 느낌처럼 길고 아득하다. 기교나 꾸밈없이 진솔하게 벼려낸 문장은 이분쉼표로 부는 9월 저녁의 바람을 닮았다. 세상을 관조하는 따뜻하고 웅숭깊은 작가의 시선이 본문에 함께 곁들인 마흔 컷의 모노톤 사진들로 더욱 빛을 발한다.
‘바람의 편력’에서 ‘사람 풍경’에 이르기까지
지친 영혼을 위한 위로와 치유, 성찰의 에세이
작가는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세상과 사람,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화해, 위로와 치유의 풍경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언어로 재현해낸다.
1부 ‘바람의 편력’은 여행과 방랑의 장이다. 작가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인도, 유럽 등지로 떠났던 자신의 여행 경험을 모티프로 쓴 글들에서 우리 일상의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다. 그의 글에서 여정의 서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바람도 쉬었다 가는 그곳에서, 몸이 경험하고 영혼이 바라본 진실한 삶의 표정이다.
2부 ‘미안하다, 사랑’은 인연과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장이다. 어느 날 뜨거운 프라이팬에 살짝 스친 그는 3도 화상의 진단을 받고 오래전 아주 잠시 스쳤던 ‘그 사람’을 떠올린다. 문득문득 치미는 통증처럼, 슬쩍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근질거리는 검붉은 화인火印이 되어버린 어떤 ‘사랑’에 대해 누군들 다른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미안한 사랑’이라는 표현이 그리움의 옷을 채 입혀주지 못한 인연의 다른 말임을 깨닫게 한다.
살짝 스친 프라이팬은 시침 뚝 떼고 있는데 내 왼팔 안쪽은 붉게 달아오르네.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도 진물이 질기게 흐르네. 더께 아래서 웅성이는 아우성, 의사는 너덜거리는 더께를 젖은 솜뭉치로 사정없이 밀어붙이며 3도 화상이란다.
아, 오래전 깊이 덴 흉터 하나 근질거리네. 볕바른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여지없이, 취한 날이나 취하지 않은 날이나 문득문득 들썩이는 흔적. 아무튼 그도 슬쩍 스치기만 했는데 염치없이 깊이 새겨진 검붉은 화인花印.
_'그 사람', 64쪽
3부 ‘백년학생’은 인생의 경이로움과 희열의 장이다. 작가에 의하면 인생의 경이로움이란 대단한 일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매주 목요일마다 서는 동네 장에서 자기가 고른 채소를 ‘퇴짜’ 놓고 알아서 좋은 녀석들로 바꿔 넣어주는 장사꾼의 모습에서 기막힌 상술보다 당당한 삶의 자세를 배웠다고 고백한다. 또한 지갑에 참을 인忍 자 석 자를 넣고 다닌다는 보일러공 시인 이면우에게서는 인내하는 삶의 경건함을 일깨우고, 20년째 사용하고 있는 세탁기를 보면서는 귀물이 되지 못한 고물들끼리 눈 맞추며 수럭수럭 사는 일상의 평화로움을 우리에게 넌지시 제안한다.
또 퇴짜를 맞았다.
내가 고른 통통하고 길쭉한 열무와 얼갈이가 내려지고 흰 띠를 두른 일산열무라는 것으로 올려졌다. 5백원씩 더 비싼 것이란다. 빗어놓은 머리채같이 고무줄로 챙챙 묶은 단정한 달래도 휙 던져지고, 산발한 달래 다발이 담긴다. 오늘은 돌미나리가 맛나다며 내 얼굴 한번 쳐다보고 쓱 담는다.
매주 목요일마다 서는 동네 장에서 내가 골라놓은 것을 팅팅 퇴짜 놓고 장사꾼 맘대로 다른 것을 집어넣는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긴 설명을 하더니, 요즘은 간단하게 끝낸다.
기막힌 상술보다 저 당당한 자세를 배운 값으로 나는 말없이 계산을 치른다.
_'배운다', 85쪽
4부 ‘사람 풍경’은 과거와 미래, 추억과 희망의 장이다. 작가는 설화와 편지, 또는 유서의 형식으로 자신을 비롯한 가족, 이웃들의 이야기를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어릴 적 집에 자주 찾아왔던 방물장사 이야기부터 집을 나서면 몇 달 만에 돌아오곤 했던 아버지의 백구두, 해바라기 같은 신림9동의 고시생 청년, 이혼하고 족두리 쓰는 재미로 평생을 살았다는 아흔이 넘은 고모, 생의 저물녘에 있는 노인의 다소 비장하면서도 욕망에 초연한 듯한 이야기까지 찬찬히 읽어내리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레 한 인간의 생에 새겨지는 기억과 상처의 무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이 모든 인연이 ‘나를 키웠다’고 말한다. 바람이 찢긴 깃발을 흔들어 정지된 풍경을 깨우듯이, 아프고 괴로운 순간마저도 우리 삶에 고유한 빛깔을 만드는 소중한 시간임을 잊지 말자는 뜻일 게다.
곳곳의 바람은 서늘하면서도 달큼했다.
바람의 어깨에 기대 바람을 품고 벼린 날들의 기록이다.
피와 땀이 수런거리고, 무릎과 무릎이 가까워진다.
부대끼어 쓰리고 아파도 멋쩍게 웃는 것이 내 지병임을 알았다.
모든 인연이 고맙다. 그들은 나를 이렇게 키웠다.
자주, 운이 좋았다.
_‘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