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냉면 /류영택

칠부능선 2013. 8. 15. 16:01

 

 

 

  그의 본업은 빵꾸장이였다. 8톤 트럭의 타이어수리가 그의 특기였다.

집채만 한 덤프트럭 아래서 자키를 올리고, 제 몸보다 두세 배나 큰 타이어를 공깃돌처럼 구리던 그는, 제 스스로 즐겨 자랑했던

노가다였다. 그런 그가 문학을 만나고 수필을 썼다. 신춘문예를 거치고 문예지에 등단하여 유명한 빵꾸장이 수필가가 되었다.

수필의 신열에 빠진 류영택이가 2006년부터 5년 동안 쓴 수필이 200여 편이나 되었다.

땡볕 내리쬐는 여름에도 눈보라 치는 겨울에도 빵꾸 때우는 시간 외에는 수필을 썼을 그였다.

저가 무슨 수레바퀴 아래서의 명상가였던가. 그저 빵꾸나 때우면서 쉬엄쉬엄 수필을 즐기고나 살 일이지, 평생 써야 할 수필을

다 당겨쓰고 말았으니 먼저 가고 말 이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지독한 노작으로 남긴 수필집이 <냉면>이다.

잔정이 많은 그가 이생에서 행복한 저지레를 한 것이 있었으니 가슴으로 딸 하나를 얻은 것이었다.

느지막에 얻은 딸아이에게 그는 세상없는 딸 바보였다.

....

짧았지만 가족과 함께 했던 지난 세월들을 세세히 복기하여 이렇게 육아일지 <징검다리>를 남긴 것도 예정된 일이 되고 말았다.

 

류영택은 재미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재미있으니 그의 수필이 재미있다. 조금은 허성한 그의 이빨 사이로 술술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 재미에 빠져 생뚱맞게도 저놈의 입을 한 대 치고 싶기도 했고, 느닷없이 목을 조르고 싶을 정도로 정겨웠다.

날 생선처럼 퍼덕이며 삶의 현장을 누비는 모습이 그러했고, 아내에게 억지떼를 쓰는 철부지 가장의 모습일 때도 그러했다.

                                                                                                  - 류영택 유고 수필집 발간위원회 '발간사' 중에서 

 

 

 

*이렇게 건강한 사람이 어찌 잠 자다 저 세상으로 갈수 있는지.

내가 바라는 죽음의 모습이지만 나보다 젊은 58년생 그의 생은 너무 짧았다.

그리고 이제사 펼치기 시작한 그의 문재文才가 아깝다.

아, 남자도 이렇게 섬세한 글을 쓸 수 있구나. 잔잔하게 웃음지어지게 하는 일들을 읽어내려가며 가슴이 짠해진다.

굵으면서 섬세한 감성, 곳곳에 유머답지 않은 유머까지.

그가 누리지 못한 오늘을 누리는 나로하며금 자세를 가다듬게 한다.

하늘나라 그의 주변에 왁자하게 사람들이 모여있을 듯 하다.

평이한 문장이지만 진실이 와 꽂히는, 수필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맛이 있다. 

지게꾼 시인 김신용이 떠오른다.

몸으로 쓴 글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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