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코가 맹맹하고 머리가 무지끈한 감기기운을 무시하고 안개비가 내리는 율공공원을 걸었다.
걸어서 대도사 앞에 있는 숲속의 찻집에 갔다. 걸어서는 처음이다.
공원은 한가로웠는데 찻집은 빈 자리가 없을 지경이다.
진한 대추차를 마시며 무쇠난로 위 호일에 감싸있는 고구마를 본다.
군고구마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땡기지 않는다. 곁들여 주는 강냉이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1991년 시집 《해금강》을 내면서 고은은 '내가 죽고 나서 몇 년 뒤 누군가가 내 무덤을 파헤쳐본다면 거기에도 내 뼈 대신 내가 그 무덤의 어둠 속에서 쓴 시로 꽉 차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가 살지 않는 미래까지도 내 시의 현재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너무 시에 집착하나? 하기야 시와의 결별 바로 옆에서 내 시는 실재하기 때문에 내 집착은 그것으로부터의 해탈에도 속한다.' 라고 썼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2년 고은의 70세를 기념해 창비사에서 펴낸 시선집《어느 바람》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그 대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길 44년을 나는 어설픈 농부였고 새였고 울음인가 하였다. 그러는 동안 말이 종교였다. 시가 오지 않으면 흙을 팠다. 흙 속에 시의 넋이 더러 묻혀 있다가 내 몸에 떨며 들어왔다. 바람 부는 날 잔터럭이 일어나며 나는 이내 가지 끝을 차고 날아올랐다. 공중에 시가 여럿이 떠 있었다. 스치다가 한 둘은 우연히 쪼아 먹었다. 자주 미쳤다. 운다. 울음이나 졸졸 가는 도랑물이나 강물 그리고 천년 절벽 때리는 파도기둥이나 다 한 집안이다. 흰 포말의 춤, 시가 거기에 함께 있더라. 세상을 좀 넓히련다. 훨훨! 이승에만 갇혀 있지 않으련다. "
오래 전에 읽었던 대목이 그땐 몰랐는데 왜 이리 숙연해지는가.
고은 시인이 생각나는 날씨였다.
문득, 절하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