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

칠부능선 2009. 12. 16. 14:22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언제 겨울이 왔을까? 계절은 사람이 늙는 것처럼 서서히 쇠퇴해갔다. 하루하루의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어느새 겨울은 가혹한 현실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저녁에 기온이 좀 내려가는가 싶더니, 며칠 계속 비가 오고, 대서양에서 온 바람이 제멋대로 불고, 습도가 높아지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결국 서머타임으로 당겼던 시간을 다시 늦추게 되었다. 그래도 이따금씩 유예의 순간들이 있었다. 외투 없이 집을 나서다 구름 한 점 없이 밝게 빛나는 하늘을 볼 수 있는 아침이 그런 때였다. 그러나 이런 아침은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가 보여주는 거짓 회복 징후와 같았다. 12월이 되자 새로운 계절은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거의 매일 불길한 느낌을 주는 강철빛 회색 하늘이 도시를 덮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의 완벽한 배경이 될 만한 하늘이었다.

  ……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이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철학적 문제들, 즉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사고를 요구하는 쟁점들이 제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 여행을 연구하게 되면 그리스 철학자들이 에우다이모니아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던 것, 즉 ‘인간적 번영’을 이해하는 데도 대찬치는 않지만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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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 영국의 미술 평론가, 사상가)은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그의 작업의 핵심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시각적인 세계의 아주 작은 특징에도 유난히 민감했다. 다음은 그가 서너 살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양탄자의 사각형들을 손가락으로 따라가고 색깔들을 비교하면서 며칠이고 즐겁게 보냈다. 또 마룻바닥의 옹이를 살피고, 맞은편 집의 벽돌 숫자를 헤아리면서 한동안 환희에 젖어 있곤 했다.” 러스킨의 부모는 이런 감수성을 장려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자연으로 안내했고, 부유한 세리주 (남부 스페인 원산의 백포도주) 수입업자였던 아버지는 차를 마시고 나면 아들에게 고전을 읽어주고 토요일마다 박물관에 데려갔다. 여름 휴가철이면 이들 가족은 영국 제도와 유럽 본토를 여행했다. 단지 쉬고 노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때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주로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움과 프랑스 북부와 이탈리아의 중세도시, 특히 아미앵과 메네치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들은마차를 타고 천천히 여행했다. 하루에 40킬로미터 이상을 가지 않았고, 몇 킬로미터마다 멈춰서 풍경을 감상했다. 이것은 러스킨의 평생에 걸친 여행 방법이 되었다.

  러스킨은 아름다움과 그 소유에 대한 관심을 통해 다섯 가지 중심적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아름다움은 심리적인 동시에 시각적으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물이다. 둘째,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 셋째,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에는 저급한 표현들이 많다 (앞서 보았듯이, 기념품이나 양탄자를 ks다거나, 자기 이름을 기둥에 새긴다거나,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를 포함하여). 넷째,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 (심리적이고 시각적인)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것에 대하여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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