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구름에 깃들어 / 천양희

칠부능선 2021. 10. 2. 19:15

구름에 깃들어 

천양희

 

 

누가 내 발에 구름을 달아 놓았다

그 위를 두 발이 떠다닌다

발 어딘가, 구름에 걸려 넘어진다

生이 뜬구름같이 피어오른다 붕붕거린다

 

이건 터무니없는 낭설이다

나는 놀라서 머뭇거린다

하늘에서 하는 일을 나는 많이 놓쳤다

놓치다니! 이젠 구름 잡는 일이 시들해졌다

이 구름,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구름기둥에 기대 다짐하는 나여

이게 오늘 나의 맹세이니

구름은 얼마나 많은 비를

버려서 가벼운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나를

감추고 있어서 무거운가

구름에 깃들어

허공 한 채 업고 다닌 것이

한 세기가 되었다

'시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리서 빈다 / 나태주  (0) 2021.10.06
가을 / 함민복  (0) 2021.10.06
수의 / 이산하  (0) 2021.09.28
사리재 옛길 / 강정숙  (0) 2021.09.24
어머니와 호미 / 김용만  (0) 2021.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