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비슷한 것은 가짜다 / 정민

칠부능선 2013. 1. 22. 20:15

                

<연암 박지원의 예술혼과 산문미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정민 교수의 책이다.

밑줄과 접혀진 부분이 많은 이 책을 다시 읽는다.

연암의 열하일기중 스물다섯 가지 이야기를 뽑아서 소개하며 해설을 곁들였다.

원문도 읽기 좋게 다듬어져있다.

300년 전 문장이 이리도 산뜻하며 화통한 것에 어찌 반하지 않겠는가.

해학과 역설, 비유을 알기쉽게 풀어주니 참고서 붙은 교과서 같다.

야금야금 야껴가며 다시 읽는다.

 

 

 

 

 

*이명과 코골이의 비유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옆의 아이게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 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의 아이가 귀를 맞대고 귀기울여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이 난 아이는 답답해 하며

소리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였다.

 

일찍이 시골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고는 것이 게 우는 소리 같기도 함,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기도 하며, 불을 피우는 듯, 솥이 부글부글 끊는 듯, 빈 수레가 덜그덕거리는 듯하였다.

들이마실 때에는 톱을 켜는 것만 같고, 내쉴 때에는 돼지가 꽥꽥거리는 듯하였다.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아! 자기가 혼자 아는 것은 언제나 남이 알아주지 않아 걱정이고,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은 남이 먼저 앎을 미워한다. 어찌 코와 귀에만 이같은 병통이 있겠는가.

문장 또한 이보다 심함이 있을 뿐이다.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니 하물며 그 병 아닌 것임에랴.

코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일깨워 주는 것에 성을 내니, 하물며 그 병임에랴.

 .... 

 이명을 듣지 않고 내 코골기를 깨닫는다면 작가의 뜻에 거의 가까워질 것이다.

....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이명과 코골기의 '사이', 이것과 저것의 '중간' 지점일 뿐이다.

 

                                                          - 세번째 이야기 <중간은 어디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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