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513

굿모닝 가곡

수요일, 수필 수업 대신으로 예술의전당 '굿모닝 가곡'을 다녀왔다. 아, 옛날 버전 싫은데...... 그것도 다 아는 노래다. '고풍의상' 한 곡 빼고. 시작하는 마음은 사실 시큰둥했다. 변사로 나온 김명곤, 오랜만인데 모습이 그대로다. 시대배경에 맞춰 매번 바뀌는 무대의상이며 정성스런 안내에 주목했다. 너무 잘 아는 노래, 봉선화부터....... 찌르르. 울컥 에잇~~ 열혈 박수를 보냈다. 그동안 공연이 고팠나보다. 끝나고 청계산쪽으로 가서 곤드레 밥을 먹고, 마루에서 차를 마시고~~ 14인이 떳떳하게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것만도 너무~ 좋았다. 그동안 4인씩 나눠 아는 척 말라며 얼마나 주눅들었나. 하루가 갔다. 91세 김 선생님, 84세 문 선배님의 포스 ㅋㅋ 빛나는 실버시대

장미, 장미

자임네랑 '홍천화로구이'에게 만나기로 했다. 홍천까지? 남편이 말한다. ㅋㅋ 분당점이다. 아주 오래 전에 홍천에 있는 화로구이집에 간 적이 있다. 아마무시하게 사람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가 첫 손님이다. 곧이어 가득 차긴했지만. 오랜만에 먹은 고추장삼겹살, 4인이 6인분 먹고, 열무냉면까지. 게다가 빵이 맛있는 찻집에서 또... . 잔뜩 무거워졌다. 오래된 인연과 오래 전 이야기를 지금 사건처럼 한다. 그래도 뒷맛이 괜찮은 건 좋은 만남인 거다. 아기가 되어버린 91세 사촌오빠와 정신 건강한 89세 오빠의 이야기가 'Dumb and Dumber' 같았다면서 웃었는데....... 멀지 않은 우리 모습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제대로 기억하고 말할 수 있을까. 대화라는 것이 제대로 이어질 수..

그날, 인사동

내가 페북에 들어가는 이유는 '좋은 글'이 거기에 있기때문이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소통은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그들의 글을 슬쩍슬쩍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리 감동해도 '최고에요'라는 빨간 하트를 누르고 수다스러운 인사는 생략한다. 그가 나를 모를 것이라는 확신때문이다. 내가 댓글을 쓰는 건 일면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를 알기에 인사의 차원이다. 매일 조금씩 자발적으로 빼앗기는 시간이다. 넓은 세상을 향한 내 눈곱재기창이다. 김미옥 님은 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쿨하면서도 깊다. 그가 읽은 책들도 끌린다. - 세상에 발 디딜 데 없어 어제는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 두 개의 전시회를 관람했다. 인사동 경인미술관의 과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의 이었다. 짐작대로 전시회는 빈부의 ..

맹인들의 호의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맹인들의 호의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인이 맹인들 앞에서 시를 낭송한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미처 몰랐다. 목소리가 떨린다. 손도 떨린다. 여기서는 문장 하나하나가 어둠 속의 전시회에 출품된 그림처럼 느껴진다. 빛이나 색조의 도움 없이 홀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의 시에서 별빛은 위험한 모험이다. 먼동, 무지개, 구름, 네온사인, 달빛, 여태껏 수면 위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던 물고기와 높은 창공을 소리 없이 날던 매도 마찬가지. 계속해서 읽는다 - 그만두기엔 너무 늦었기에 - 초록빛 풀밭 위를 달려가는 노란 점퍼의 사내아이, 눈으로 개수를 헤아릴 수 있는 골짜기의 붉은 지붕들, 운동선수의 유니폼에서 꿈틀거리는 등번호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낯선 여인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싶다 - ..

시 - 필사 2022.05.21

공짜는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공짜는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공짜는 없다. 모든 것은 다 빌려온 것이다. 내 목소리는 내 귀에게 커다란 빚을 졌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를 고스란히 내놓아야 하며, 인생에 대한 대가로 인생을 바쳐야 한다. 자, 여기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다. 심장은 반납 예정이고, 간도 돌려주기로 되어 있다. 물론 개별적인 손가락과 발가락도 마찬가지. 계약서를 찢어버리기엔 이미 늦었다. 내가 진 빚들은 전부 깨끗이 청산될 예정. 내 털을 깎고, 내 가죽을 벗겨서라도. 나는 채무자들로 북적대는 세상 속을 조용히 걸어 다닌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날개에 대한 부채를 갚으라는 압력에 시달리는 중. 또 다른 이들은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나뭇잎 하나하나마다 셈을 치르는 중. 우리 안의 세포 조직은 송두리..

시 - 필사 2022.05.21

일요일에 심장에게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일요일에 심장에게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보태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아서, 타고난 성실성과 부지런함에 대해 그 어떤 보상도, 아첨도 요구하지 않아서. 너는 1분에 70번의 공로를 세우고 있구나. 네 모든 수축은 마치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는 조각배를 바다 한가운데로 힘차게 밀어내는 것 같구나.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한 번, 또 한 번, 나를 전체에서 분리시켜줘서, 심지어 꿈에서조차 따로 있게 해줘서. 내가 늦잠을 자지 않고 비행시간에 맞출 수 있게 해줘서. 날개가 필요 없는 비행 말야.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내가 또다시 잠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해주어서, 비록 오늘은 일요일, 안식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날이지만, 내 갈비뼈 바로 아래쪽에선 휴일을 코앞에 둔 분주하고, ..

시 - 필사 2022.05.21

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마음이 분주할 땐 시집이 좋다. 시집 열두 권의 선집이다. 옮긴이의 해설까지 500쪽에 가깝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가장 진솔하고 소박한 수상 소감이라는 평가를 받은 수상 소감의 맺는 말이다. "시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아무 것도 없다. 시인이 되긴 글렀나 보다. *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놀자, 책이랑 2022.05.21

스승의 날이라고

3인과 윤교수님을 모셨다. 두 주 전에 예약하고 드디어 '헬로 오드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왁자한 분위기때문에 당황스러웠는데 음식이 모두 맛있어서 용서가 되었다. 차는 넓은 식물원?으로 이동해서 마시니 좀 나았다. 가끔씩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감사했다. 아, 스승의 날이라고 수필반에서 좀 과한 를 받았다. 나도 과하게 한 턱 쏘는 걸로. 364일은 '학생의 날'이다. 나도 학생이다. 학생이 좋다. 91세 윤교수님, 84세 문선배님... 함께 한 27년 세월 사진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지만 이 청보라색 꽃이 어찌나 이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