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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고운 손

89세, 고운 손 노정숙  광역버스를 탔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분이 나를 옆에 앉으라고 이끈다. 자리에 앉고 보니 곱게 모은 손에 메니큐어가 예사롭지 않다. 보라색에 은빛 반짝이가 도드라져 눈길을 끈다. 손톱 손질 어떻게 하셨냐고 물으니 심심해서 직접 했다고 한다. “멋지세요.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하니 손을 모아주신다. 가운뎃손가락에 보라색 빨간색 보석이 줄줄이 박힌 반지도 반짝인다. 보라색을 좋아해서인지 외롭게 살았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모자도 코트도 보라색이다. 지금 89세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에 결혼해서 5녀 1남을 두었는데 남편이 41살에 저세상을 갔다고 한다. 돈 벌며 자녀들을 혼자 키웠다. 사는 게 힘들었지만, 자녀들이 모두 결혼했고 손자녀가 13명이라고 한다. 지금..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한 세기에 한 명씩만 나오는 작가' 30개국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상찬이다.우리나라에서도 초판 20쇄다. 얼마전에 네플릭스에서 키건의 소설 가 영화로 나온 를 봤다. 먹먹한 울림이 오래 남았다. ​소시민이 의식에 눈 뜨는 순간, 의식하지 못하고 살던 가슴 깊은 곳에 눌러두었던 감정이 어떻게 터지는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멀쩡한 겉모습 속에 잔잔히 균열이 시작하는 과정도 촘촘하다.환대받지 못한 출생, 뿌리내릴 수 없는 곳에서 자라야 했던 성장기,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으로 자신을 몰아가지만 속에서 뭔가가 자란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역설이다. 개인의 안위를 위해 묵인해야하는 것과 사회의 안위를 위해 밝혀야 하는 것이 있다. 불법과 잔혹을 눈 감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요즘 우리 현실과..

놀자, 책이랑 2024.12.10

여의도 가는 길

지역 어르신들과 참담한 심정으로 국회로 향했다.흑석동 역사까지 갔다가 지하철, 버스, 택시 이용불가로 2시간 30분을 시민들과 국회까지 걸어갔다.함께 걸었던 76세 주민의 아들이 동행에 감사하다며 어머니께서 본인에게 보내주신 글을 전했다.​'엄마는 집에 와서 울었어미소띤 얼굴로 사과하는 윤석열 모습에분해서 참을수가 없었어 광주 사태 때막내는 갓난이였고 큰아들 다섯살둘째 세살 아빠는 중동가시고밖에서는 무장한 군인들 군화발 소리에엄마는 무서워서외할머니 한태 전화 했어외할머니께서는 불을 끄고 있으라고 했어불을 껏으나 아이들은잠들지 않아도 일어 나지 않고어둠속에서 까만눈만 반짝거리고숨죽이고 말하지 않았어그때 생각이 또 되살아 나서눈물이 절로 난다76세 나이에국회의사당으로 달려 갔어많은 인파로 인해지하철도 버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