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칠부능선 2006. 7. 23. 22:25

 

  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小白山脈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가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 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正義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나면 우리 모두 다 덮이겠느냐.

 

 

 

  *文義 : 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지금은 대청댐에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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