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수필에서 출간 축하식을 했다. 24년 내 글쓰기의 산실이다.
작가의 말을 읽는 것으로 마치려고 했는데,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금욜, 김창완이 읽은 '봄봄봄'을 본인이 직접 읽어달라는 것을 끝으로 내려왔다.
다시 들으니 무척 화려한 문체란다.
<봄봄봄>
언덕배기에 산수유가 선웃음을 날린다.
제비꽃 살풋 고개 숙이고 쑥은 쑥쑥 올라와 푸르른 향내로 길손의 손길을 맞으리.
길가에 넌출넌출 수양버들 팔 벌리니 흰머리 휘파람새 그 품에 집을 짓고,
벌판은 꽉 짜인 풍경화.
실바람에 꽃비가 내린다. 좁은 길 굽은 길 연분홍 점묘화가 지천이다. 벚꽃이 진다고 애달플 건 없네.
봄볕은 벚나무 아래 곳간을 열어 이팝꽃 팡팡 나누네.
이팝꽃 곁 철쭉이 오동통 꽃망울 앙다물고 머지않아 여민 가슴 열어보이리.
꽃비, 걱정 없다.
벚꽃은 바람에 휘날릴 때가 절정인걸. 절정에서 스러지는 저 눈부신 산화, 달콤한 봄날이다.
.....
앞 산, 키 큰 소나무가 팔 벌려 새들을 부르고
단풍나무가 아직 마른 잎을 떨치지 못하는 사이
눈치 빠른 놈은 뾰족 아기새부리 같은 여린 잎을 내밀었다.
허리께서 나긋나긋 진달래 속삭이고, 희고 붉은 철쭉들 수다 질펀하다.
먼데 산 바라보면 여리여리 연둣빛 잔치 한창이다.
진진 초록으로 건너가기 전 말랑말랑한 생명의 시작, 만만 봄이다.
봄산에 들바람이 불면 머리에 꽃 꽂고 싶어지는 날 많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일순 깜깜해지는 모니터처럼
한참 얘기 중에 뚝 끊어지는 수화기마냥 그가 등 돌린 것도 삽시간,
꽃보라 휘날리는 것도 잠깐, 목련이 환한 것도 한 순간
쟁쟁 햇살이 애먼 눈 흘기니 겨우 버티고 선 무릎이 꺾인다.
꽃이 져야 잎이 돋듯, 어제의 그를 보내야 내일이 온다.
가기위해 오는 봄, 가거라 그대.
피어라, 오늘
<작가의 말>
위로가 필요한 나날이다.
오늘이 최고라고 세뇌하며, 깊고 엄한 시간의 힘에 몸을 맡겼다.
8년 만이다. 그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추렸다. 모자라고 아픈 걸 어르고 달래며 맺은 열매다. 단내 나는 탐스런 복숭아가 아닌 새들이 입질을 한 못난이 사과에 가깝다. 버려도 아깝지 않겠지만 누군가 그 사과가 꼴보다 맛이 괜찮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오래 앉아 있었고, 골방에서 광장으로, 멀리 중세로도 날아다녔다. 진창과 천상을 오가며 많이 아팠고, 또 힘껏 느꼈다. 허투루 산 시간 없는데 부끄러운 건 피할 수가 없다.
위로를 찾는다.
내 글쓰기를 도와준 건 남편과 딸의 무관심이다. 그로 인해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들은 자주 책을 선물하며 응원한다. 덕분에 조금 더 눈길이 넓어졌다. 조용한 가족은 드러내지 않고 나를 밀어준다. 나는 모국어로 웃는다.
도처의 스승은 정신이 번쩍 들게 일깨워 준다. 글밭의 오랜 동인은 마중물과 죽비다. 내 거울인 말없는 친구들도 여전하다. 열성으로 에너지를 그리는 자임은 내 오늘의 각별한 에너지원이다. 든든하고 고맙다.
충분한 위로다.
눈 밝은 독자와 도서출판 북인에 감사드린다. 모든 인연이 애틋하다.
계속 운이 좋다. 깊이 절한다.
2021년 봄날에
노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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