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 레시피
류명순
주제로는 삼각관계, 의심 반 심증 반
내 연애사를 계량컵에 부어본다
유통기한을 철저히 지키는 그녀가
내 솜씨에 의문을 제기한다
매콤함과 신선도를 함유한
나의 일편단심에 의심을 품었다
입맛을 자극하는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우선 잘 정리한 의혹을 다지고
딱딱한 심층을 부드럽게 만들어 잘 섞어준다
순서가 뒤바뀌면 맛이 틀리므로
두 가지를 잘 버무려 소스를 만든다
의문 한 덩어리 꺼내
부위별로 잘라 바삭하게 튀겨낸다
내가 만든 소스를 그녀가 알아챌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여러 번 그녀의 입맛을 심문해봤지만
묘한 미소만 한 입 가득 오물거릴 뿐
몸이 달아오를수록 그녀의 입맛은 까다롭고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생소한 표정만 짓는다
입은 단맛을 원하며
마음은 쓴맛을 이야기한다
가끔 그녀의 입에서 다른 소스의 냄새가 난다
그럴 때마다 의구심은 깊어가고
혀끝만 탄다
내 몸이 계속 익는 줄도 모르고
더욱더 활활 불을 지른다
-시집『새들도 변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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