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아내를 그리며 / 이지

칠부능선 2018. 9. 28. 11:42

 

아내를 그리며

이지

 

 

상투 틀고 쪽지며 부부가 된 이래

둘 다 사랑에는 얽매이지 않았지.

오늘 아침 당신의 부음 듣고서

나도 모르게 서러움에 잠겨버렸소.

 

끌리는 사랑이야 없었지마는

그대의 현숙함을 서럽게 기리노라.

부부간 반목이 생긴 적이 없으니

거안제미로 섬기기 어언 사십 년,

친척들마다 효성을 칭찬하고

시부모도 당신이 애쓴다고 위로했지.

 

손님이며 벗들이 주야로 드나드니

술대접 손님치레에0 거북이등처럼 터진 손.

자애로운 마음으로 무엇이든 나눴지만

스스로는 절약하며 집안살림 알뜰했지.

 

남편이란 작자가 불도에 미쳐 떠나가며

당신만 세상 끝에 홀로 떨궈놨구려.

물가로 나아가 물로기 희롱 바라보네

봄빛 물든 산에는 새만 홀로 우짖는구나.

 

가난할 때 사귐도 저버리면 안 되거늘

조강지처야 말할 나위 있으랴!

기결과 양홍 같은 애처가 중에

이지 너는 누구와 견줄 수 있더냐?

대장부 뜻을 온 천하에 두었으나

당신이 따르지 못함을 슬퍼하노라.

 

<분서Ⅱ> 시편 6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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