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숙 시 3편
광장이 본 것
노정숙
긴 머리칼 출렁이며 그녀가 지나가면
늙고 젊은 남자들은 넋놓고 쳐다본다
통통 튀는 발걸음
모든 여자들은 눈흘기며 바라본다
오래 전 시라쿠사 광장에서
아르키메데스의 적은 로마군이었지만
지금, 여자들의 적은
관능유발자 그녀다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는 반사경으로
로마군 함대를 불태웠는데
나른한 한낮
그녀를 훔쳐보던 사내 녀석들은
확대경으로 죄 없는 개미를 불태운다
아름다운 그녀는
머리를 잘리고 돌팔매를 맞고
옷이 찢긴다
로마병사의 창에 찔려
실없이 죽은 아르키메데스처럼
관능은 그녀의 죄다
발견
마스크를 쓰고보니
내 숨이 이리도 뜨거웠구나
내 결이 네게 닿지 못하고
속에서 웅얼대니
노상 가슴이 저몄구나
결혼의 비애
신부는 신랑이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신부는 아직 콩깍지를 쓰고있군요
신랑은 신부가 천사라고 생각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신랑도 아직 환상에 빠져있군요
하긴 두 사람 다 결혼이 처음이죠
실없는 농담에 이어
신랑신부에게 처방전을 내린다
신부, 내 말을 복창하세요.
남자는 모자란 사람이다
신랑, 복창하세요.
여자는 아픈 사람이다
내가 30년을 살고서야 터득한 것을
단방에 알려주는
주례를 만나 한참 웃었다
- <문학사계> 2019.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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