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The 수필> 선정평

칠부능선 2019. 2. 21. 13:52

<The 수필> 2019 빛나는 수필가

선정평- 노정숙

 

 

<사진, 또 하나의 언어>

김근혜

 

사실을 복사하는 사진이 싱겁다며, 사실 안쪽의 상처를 왜곡하고 부풀린다. 생생한 현장을 긁고 지워 고풍스럽게 만들기도 하며 꿈꾸던 이상을 사진의 세계와 소통한다. 세상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을 담아내겠다는 시선으로 만나는 현실은 스산하다. 명암이 극과 극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 세상은 모두 같은 조물주의 선물이 된다. 라오스 오지마을에서 오래 전 우리의 시간을 읽는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셔터를 눌러 본 사람이 쓴 사진의 세상은 준엄하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가 현실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있어 바라보는 마음이 든든하다.

 

 

<모탕>

김순경

 

모탕은 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 밑에 받쳐 놓는 받침대다. 작가는 아무도 눈길 주지 않은 그 나무토막의 비의를 헤아린다. 모나게 태어나 정해진 운명이다. 운명에 반항도 해보지만 바로 꺾쇠나 말뚝으로 결박된다. 모탕이 수많은 톱날과 도끼날에 잘리고 패여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헌신적으로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의 모습과 겹쳐놓았다. 이제 모탕은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마당 한구석에서 썩어가고 있다.

나무는 태어날 때부터 길이 정해진다. 어찌 나무뿐이겠는가. 자신의 노력보다 기득권으로 횡행하는 사회현상까지 헤아리게 한다. 모탕처럼 단단한 필력으로, 낮은 것에 대한 깊은 시선과 나직한 목소리로 큰 울림을 준다.

 

 

<소금꽃>

박월수

 

태양도 소금밥을 먹는다는 곰소다. 사는 일이 싱겁게 느껴질 때 찾아가 간기를 넣고 온다는 곰소의 염전. 모든 음식의 시원에 소금이 있다. 소금이 비로소 꽃이 되고 작은 금이 되는 과정을 숨죽이고 그려본다. 촘촘히 엮은 작가의 언어는 염부의 꽃모자처럼 생의 누추를 덮어 환하고 넉넉하다. 눈물을 버리고 독하게 단도리한 삶이 가볍듯이 간수를 버린 소금은 단맛까지 품는다. 그 곰삭은 시간을 새기며 덤덤하게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정갈한 한 상을 받은 느낌이다.

 

 

 

〈꽃을 헤아리다〉

남홍숙

 

눈부신 보랏빛 꽃나무 아래서 환희와 몽환에 젖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공부하러 간 이국에서 참척이라니… 필설로 풀지 못할 비통을 꽃에 얹었다. ‘보라색 초롱꽃잎이 제 몸을 비틀어 허공에 나부끼다 떨어졌다. 나는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떨어진 꽃 속에서 오물거리던 개미와 벌레를 분리시켜 주면서 꽃, 아니 자신을 헤아린다. 실컷 울고 난 후의 말간 얼굴이라고 할까. 곡에도 도가 있다는 허균의 말이 떠오르는 늠름한 작품이다.

 

 

 

〈어서 와, 부산은 처음이지?〉

김정화

 

대뜸 야자를 트는 발랄한 문체가 끌어당긴다. 사투리는 그 지역 특유의 정한과 해학이 있다. 사람살이의 깊은 속내를 투사하며 혈연과 지연을 아우르는 정서가 농익어 들앉아 있다. 사투리에서 풍기는 맛과 끈끈한 힘은 어떤 표준말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 문학작품에서 만나는 사투리는 고향의 애틋함과 시대정신을 품고 있어서 작가의 염려처럼 ‘死투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투리로 통하는 소통은 직통이다.

 

 

 

 

등외품 앞에 굴러온 도사리

김규원

 

초로에 접어든 작가는 중심에서 멀어진 시간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가족 모임에서도 적당한 시간에 일어설 줄 알고, 혼자서 풍요로운 시간을 만들며 지낸다. 자식에게 정성을 쏟던 시간은 그것으로 완성이다. 조각 시간을 즐기던 중, 발 앞에 굴러온 도사리의 경의를 받는다. 자신을 도사리를 면한 등외품이라고 했지만, 겸손이다. 열심히 살아온 관록은 관조와 배려를 몸에 익혔다. 지나온 생의 단맛과 향기는 다가올 삶의 거름이다. 작가의 예지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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