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기고문
최영미 시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 "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니들' 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 주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술꾼들이 몰려드는 깊은 밤이 아니었기에 빈자리가 보였으나, 그래도 우리 일행 외에 예닐곱 명은 더 있었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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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는 이와 함께 본인에 대해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시절만 하여도 탑골은 가난한 문인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배고프고 술고픈 문인들이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고 눈물이 넘치던 순정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이라며 "있을수 없는 가공의 소설은 삭제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한 씨가 올린 글과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보낸 글의 전문이다.
▲ 한복희씨의 글
성추문 으로 사회가 요동을 친다. 썩거나 앓던 이는 언젠가는 뽑게 되어있다.
힘의 논리로는 강자가 약자를 추행하면 힘없이 당한자는 일생을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로 인하여 멍에로 끓려 다닌다.
성추행 폭로 고발자의 용기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화이팅!~ 하라고,
최영미 시인이 언급했던것 처럼
문단에도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시인이 언급한 고은시인은 그런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것 으로 안다. 고은 시인은 시인이며 입답꾼 재담가다. 30년전 그시절 문화는 섹시하다. 입술이 매력적이다. 맛있게생겼다. 그런 농을 침을 흘려가면서 위안 삼아 많이들 입에 오르내리며 순정이있던 밤문화 시절이 있었다. 최루탄 가루에 콧물 눈물 흘리고, 암울했던 6월 항쟁과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에서 시대의 아픔과 새희망을 노래하며 뜻을 함께 하는 문인들이 모여 그시대 그시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행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체벌을 하는건 심한것 같다.
....
8살만 되어도 아이 손에는 핸드폰을 들려주고 각가정에는 승용차 성인1대씩 소유하고 전국 팔도를 자유자재로 유람하고 세계여행을 내땅 밟듯이 자유로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최첨단 문화왕국에서 금연지역 시각으로
희뿌연 30여년전 벌어’던 성희롱 발언들을 어떻게 부풀려도 너무 부풀려 마녀사냥 하듯 죽일 죄인을 만드는것 해도 해도 너무 한것 같다.
최영미 시인 그대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탑골 공원 주변 정확한 장소명과
그자리에 함께 동행한 인물명
그리고 고은시인의 추태 목격자 문인거명요함. 문단에 물과기름 처럼 겉도는 최영미 시인 평소 욕심이 남다르다는건 알지만 문단의 거목을 낭설만 가지고 진흙탕으로 끌어들여 매장시키려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그래야만이 자신이 주목받기 때문인지? 아니면
성희롱 내지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직접적 으로 당한적은 있는지?
펙트로근거를 올렸으면 한다.
여론에 휘말려 매장 당하게 하지 말고 정획한 펙트가 아니면 소설 그만 쓰고
반성할게 있으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사죄하길 바란다. 그렇게
소설 쓰면서까지 자신을 홍보하고 싶나?
문인이면 문인답게 좋은글로 독자들에게 평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설설설 갖으고 진실인 처럼 모든이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지 말기를 ... 그렇다하여
문단에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건 아니다. 알맹이들은 빼고 껍데기를 논하면서 실체없이 허무하다. 그시절은 남자 문인들보다
젊은 20~30십대 여성들이 문단에 등단 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했는지 묻고싶다.?...
명망 높은 출판사에 시집 출간내고싶어 어떻게들 했는지? 그러고서들 시대가 바뀌니 모든 책임들을 강자 약자로 분류를 한다면 그건 아닌것 같다. 거두절미 하고
소설은 그만 쓰고 고은시인이 사회에서 지탄 받을 만큼 근거있는 기행 펙트로
밝혀 주기를...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일간지에 1000자 분량 올린글은 최영미 소설 이였다가 펙트다.
ㅡ참고로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 으로서 ( 최영미 표현에 따르면 " 술집마담 " ) 최영미가 고발장에서 언급한 고은 시인의 그러한 자위행위 장면은 전혀 목격한 적이 없으며 10년을 넘게 그분을 지켜 보았어도 그런적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자들과 인터뷰하실때도 농담을 흘리기는 했을지언정 잡스럽거나 추행은 일절없이 목소리를 깔고 젊잖으셨다.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그러기에
최시인이 고발장에서 마치 내 말인 것 처럼 인용한 글
ㅡ" 아유 선생님두"
라는 말은 한적도 없다는 것을 밝힌다.
소름끼친다. 나의 성격이 곰살부리는 여우도 아니고 거친 야생마 기질이 강한 내가 섹기 부리듯 ... 헐
ㅡ참고로 나는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이야기들>에서 [풍류탑골] 2000년4월부터 50회가량 민족문학인들의 뒤이야기를 연재 하기도했다. 고은시인이 만약 그러한 기행을 했다면 그 재미난걸 왜 내가 연재할 당시 추가시키지 않았겠는가.
최영미가 언급한 1992년겨울~1994년 봄 최시인이 문단에도 등단하기 전에
잘나가는 명망 높은 출판사 사람들 틈에 끼여서 왔던 기억도 생생하고 그는 고은 선생님과 함께 동석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시절만 하여도
탑골은 가난한 문인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배고프고 술고픈 문인들이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고 눈물이 넘치던 순정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이였지 있을수 없는 가공의 소설은 삭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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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외로운 초인(超人)> / 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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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도 적잖이 알려져 있는
80대의 원로 고은 시인이 규탄을 받고 있다
술좌석에 합석한 여류를 상습적으로 성희롱했다며
괴물이라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
한 여류는 이어서 또 폭로하기를
모 술집에 혼자 들어온 괴물시인이 의자에 누워
지퍼를 열고 자신의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자위를 하다가
손님인 여성들을 유혹했다는 주장이다
.
정황으로 보아 취중에 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이는 분명 상식을 넘어선 비호감적인 행위인 건 분명하다
나 같은 졸장부는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충격적인 대담한 퍼포먼스다
.
그대는 혹시 그럴 만한 용기가 있는가?
천만에, 그런 행위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세상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는 초연한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관습과 세속적 가치를 벗어난 초탈의 경지에 든 사람,
어떠한 것에도 거리낌이 없는 무애행(無碍行)이다!
원시적 천진성을 잃지 않고 있는 원형적 인간의 행위이다
.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성(聖)’을 얹어
유아독존(唯我獨尊)의 허장성세를 부리기도 했다
보통의 시인들에겐 몇십 명의 인물시 쓰기도 버거운데
만인의 생애를 들추겠다고 덤벼든 것만 봐도
그의 배포와 스케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가 남긴 많은 기벽들은 어쩌면
세상을 자신의 ‘뭣’으로 까뭉개겠다는 호기(豪氣)였으리!
.
괴물처럼 보인 그는 외로운 초인이다!
그와 세상의 싸이클이 맞지 않아
세상은 그를 품기엔 아직 너무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