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이 좌우명이라며 하는 말이다.
'그려려니' 하고 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지 않는 건 뭔가.
이제 현역이 아니니 인사치레를 좀 줄이라고 해도 버럭 화부터 낸다.
명절 선물 보내는 기준을 예전에 고마웠던 분이나 여전히 고마운 분으로 하자고 했다.
우리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은 제외해야 옳은 일이다. 그들이 느낄 부담감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겨우, 한 건을 줄였다.
일년에 한 번이면 더 좋을 명절. 두 번 모두 나의 일이란 것이 얼마나 부담인지 그는 전혀 모른다.
물론, 나도 온전히 반갑기만 하려면 가볍게 치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언제가 동서가 많은 설거지하면서 뷔페로 하자는 말도 했다. 뭔가 궁리를 해야겠다.
그러려니,
단념이나 포기를 너그럽게 포장하는 말이다.
하긴 내 의견으로 상대를 변화시키기란 묵은 콩에서 싹을 내는 일처럼 어렵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쿵, 하는 커다란 각성을 하기 전에는.
어제 절친의 모친 문상을 갔는데 상주께서 남편에게 간곡히 금연을 하라고 이른다.
구체적 폐해를 장황히 설명하면서..
나는 그저 웃었다.
아, 그의 어머니는 코에 호수를 끼고 2년 6개월을 살다 가셨단다.
마지막 순간에 판단을 잘 못해서 어머니도 보는 이도 고생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인공연명은 서로 못할 일이었다고.
그래서 본인들도 사전진료의향서를 써두기로 했단다.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70대 어머니는 내 눈에도 생전 모습처럼 선했다.
그러니 어찌 모든 의료 행위를 멈추라고 할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니다.
각 가정의 형편따라 다르게 진행되는 죽음을 맞는 모습.
이것 역시 그러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