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현대문학》, 유신 복고적 행태… 국내 최장수 문예지 어떡하나
〈한국일보〉 2013.12.13 21:26:50
최근 서너 달 사이 문인들이 모이는 자리면 빠지지 않는 화제가 하나 있었다. 국내 최장수 문예지 <현대문학> 얘기다. 9월호에 수록된 박근혜 대통령 수필 예찬론으로 곤욕을 치른 이 월간지에 자성의 기미를 기대했던 작가들은 이후 연달아 이어지는 일탈 사례에 깊은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연재를 계약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정치적 이유를 들어 게재 거부했다는 얘기가 속속 전해지는가 하면 대통령 수필 수록에 대한 사과문을 싣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편집위원들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작은 문제의 '박비어천가'가 수록된 9월호부터 연재가 중단된 서정인(77)씨의 장편소설 '바간의 꿈'이었다. 두 차례 연재 후 3회차 원고를 보낸 서씨는 편집자로부터 작품을 실을 수 없겠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인물의 대사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정치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10월호부터 장편 연재를 시작하기로 한 소설가 정찬(60)씨에게도 연재 약속 파기 통보가 갔다. 연재 제안을 받고 1970~80년대 청춘을 보낸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장편소설 1회분 원고를 보낸 정씨는 "<현대문학>은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작품은 싣지 않는다"는 양숙진(65) 현대문학사 대표 겸 편집주간의 이메일을 받았다.
소설가 이제하(76)씨가 지난주 "내년 1월호부터 <현대문학>에 연재키로 한 소설을 컷 당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곪은 환부는 마침내 터졌다. 한국으로 귀화한 선교사의 삶을 다룬 장편 연재 1회분 원고에 "'박정희 유신'과 '87년 6월 항쟁'이라는 두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게재를 거부당한 것이다.
앞서 9월에는 '박비어천가'를 수록한 데 대한 사과문을 싣자는 편집위원들의 요구를 양 주간이 받아들이지 않아 시인인 김소연, 신해욱 두 편집위원이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9월 이후 소설가 이순원, 시인 손택수 심보선 황인찬씨 등 <현대문학>에 원고 게재를 거부하거나 구독을 중단하는 작가들의 명단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일련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불똥은 정치권에까지 튀었다. 민주당은 13일 성명을 내고 "<현대문학>은 이것이 자체 검열인가, 외부 압력인가" 밝히라고 요구했다. 양 주간이 언론과 접촉을 피해 확언할 수는 없지만, 박 대통령 지지자인 양 주간의 독단과 전횡이라는 게 문학계의 중론이다. 1997년부터 <현대문학>을 맡아온 그는 박 대통령의 어린 시절에 깊은 연민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60대 지지자라는 게 주변 설명이다.
<현대문학> 사태는 느닷없이 7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유신 복고'의 사회적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이지만, 문학 쪽은 간단치 않은 사정이 하나 더 있다. 소위 말하는 문학의 위기다. <현대문학>은 좋은 작가들을 수도 없이 배출해낸 매우 중요한 문예지이고, 그런 만큼 작가들 대부분이 이 잡지가 혹여라도 폐간될까 안타까움 속에서 마음을 졸이고 있다. "소중한 문예지가 자본주의 정치적 성향에 의해 훼손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는 걱정은 소설 연재를 거부 당한 정찬씨의 말이다. 서정인씨는 한 발 더 나아가 "후견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선 문예지를 낼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나무라야지 표현의 자유만 외치는 것도 아전인수 같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은 조만간 편집위원들의 의견을 모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입장을 잡지에 공표할 입장이라고 밝혔다. 1월호는 제작이 상당 부분 진행돼 2월호에나 실릴 예정이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정치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시대의 수구적 분위기에 편승해온 편집주간이 이 소중한 잡지의 전통을 훼손한 데 책임지고 편집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획기적 내용이 실려 있기를 기대한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단어 두 개가 왜 문제 되나” ‘소설 연재 거부’ 문인들의 반응과 움직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2013-12-12 〈경향신문〉
ㆍ“문학은 자유의 언표입니다” “성명보다 기고로 의견개진”
월간 《현대문학》의 잇따른 소설 연재 거부·중단 사태에 대한 경향신문 보도가 나가자 12일 각계에서 이를 비판하는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문인들은 “창작의 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받아들이고 개인이나 복수 단위의 의견 제시, 성명 발표, 칼럼 게재를 논의했다. 유명 인사들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현대문학》의 처사를 꼬집는 한편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를 우려했다.
안도현 시인은 “보도를 보고 심란해 동료들에게 문자를 돌렸더니 10여명이 뭔가 의견 표명이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답신을 보내왔다”며 “성명 발표 등 집단행동보다 개인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견을 밝힌 문인은 박범신, 공지영, 한창훈, 김선우, 송찬호, 이순원, 이정록, 정도상 등이다.
황인찬, 박준 등 젊은 시인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시인들과 공동으로 《현대문학》의 연재 거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겠다고 밝혔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인 이시영 시인은 “매우 심각한 사태이지만 사기업이 운영하는 문예지에 대해 작가회의 명의의 성명을 낼 수는 없다”며 “대신 소속 작가들이 여러 매체에 릴레이 칼럼을 기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시인은 개인 자격으로 트위터에 “이제하 선생은 1974년 유신시절 ‘이런 암울한 시대에 양심상 도저히 상을 받을 수 없다’면서 "<현대문학상>을 거부한 순수한 영혼의 자유주의 작가입니다. 그런 분의 연재소설을 거부할 권리가 잡지사에 있는지? 차라리 《유신문학》으로 제호를 변경하든가!”라는 글을 올렸다.
트위터에는 이 밖에도 “유신 부활입니다”(박지원 민주당 국회의원), “이제하 선생이 무슨 정치소설 쓰는 분이냐? 민중문학이 창궐하던 1980년대에도 거기 전혀 휩쓸리지 않은 분이다. 단어 두 개가 왜 문제가 돼?”(고종석 작가), “문학은 영혼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죽습니다. 문학은 자유의 언표입니다”(김정란 상지대 교수), “소설이 죽어버렸다. 원고지 100장. 유신. 단 두 글자에 이제하의 소설은 문학잡지에서 삭제되었다”(서해성 작가) 등의 글이 올라왔다.
소설가 이제하 인터뷰 “월간《현대문학》으로부터 아무런 해명 못 들어”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2013-12-12 <경향신문>
페이스북을 통해 월간 ‘현대문학’의 석연치 않은 연재 거부 사실을 밝힌 소설가 이제하씨(76)를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이 “진보도 보수도 아닌 아나키스트”라며 ‘현대문학’으로부터 여전히 아무런 해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 5공 땐 ‘남산’이 문제, 대선개입 입장 안 밝혀 ‘유신독재’ 비유하는 듯
-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이유는.
“페이스북은 2010년부터 시작했다. 내게 페이스북은 동료 문인이나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문예지다. ‘현대문학’에 장편을 연재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이미 알린 터였다. 언제 소설이 실리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연재를 못하게 됐으니 이유를 밝혀야 했다. 그래서 연재 거부 경위를 간략하게 적었던 것이다.”
- 《현대문학》이 왜 연재를 거부했다고 생각하나.
“박근혜 대통령 찬양으로 문제가 됐던 9월호 발행 이후 양숙진 주간이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던 것 같다. 내 소설이 실리면 《현대문학》이나 시댁인 대한교과서에 화가 미칠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기도 하다.”
-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나.
“연재를 거부당한 적은 없다. 1986년 한국일보에 「광화사」라는 장편을 연재할 때 당시 한국일보 문학담당 기자이던 김훈씨가 내 원고에서 ‘남산’(중앙정보부)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문장을 완곡하게 수정한 다음 나중에 내게 사과한 적은 있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 때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 작가생활을 하면서 특정 진영에 선 적이 있나.
“나는 진보나 보수 어느 쪽도 편들지 않았다. 나는 아나키스트다. 양쪽 다 진절머리 난다. 두 진영을 평생 욕하면서 살았다. 60년 동안 좌우가 대립하는 꼴을 봐왔는데 지금도 똑같은 모습이다.”
- 젊은 문인들 사이에는 《현대문학》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자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인 의견 표명은 괜찮은데 단체로 모여 성명을 낼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문예지가 없어져서는 안된다.”
-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다수의 표를 받아 대통령이 됐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그걸 부정하면 정치적 보복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다.”
- 박근혜 정부를 ‘유신독재’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권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등의 사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책임질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투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 ‘현대문학’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해명도 없나.
“겨우 단어 두 개 때문에 원고를 거부한다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현대문학》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달리 할 말이 없을 터다.”
서정인 소설은 연재 중 중단됐다… 《현대문학》, ‘박정희 비판적 묘사’ 문제 삼아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2013-12-13 〈경향신문〉
월간 《현대문학》이 작가 이제하씨와 정찬씨의 장편소설 연재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한 것(경향신문 12월12일자 1·2면 보도) 이외에 서정인씨(77·사진)의 장편 연재도 같은 이유로 중단시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문제가 됐다.
서씨는 「바간의 꿈」이란 장편을 월간 《현대문학》올 7월호와 8월호에 두 차례 연재했다. 이 작품은 미얀마의 불교성지로 꼽히는 바간이 배경으로 나온다. 서씨는 1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선진국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지 알아보려 했다”며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회와 2회는 연재됐으나 3회가 문제가 됐다. 서씨는 9월호에 실릴 3회분 원고를 보낸 뒤 《현대문학》 편집자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잡지 사정으로 게재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는 9월호 편집후기에 ‘본지 사정으로 연재를 중단한다’는 사고를 냈다. 서씨는 “평생 처음 겪는 일이고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창피한 일이어서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방적인 중단 통보였다”며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말했다.
《현대문학》 관계자는 서씨의 소설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3회에서 등장인물들이 이승만부터 노무현까지 역대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화가 나오는데 ‘박정희가 계집을 끼고 술 마시다가 총 맞아 죽었다’는 발언이 나오자 양숙진 주간이 수정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서씨는 “《현대문학》 사람들의 눈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원고를 쓰던 당시 내 소설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그런 편협한 생각으로 어떻게 문예지를 만들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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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현대문학》의 주요 연혁 ▌
1955
1월 《현대문학》창간호. 사장 김기오. 주간 조연현, 편집장 오영수 임명.
1961
2월 김광수 사장 취임.
1966
2월 오영수 편집장, 편집위원으로 발령. 김수명 편집장 임명.
1974
10월 편집장 김수명 사임, 김국태 편집장 임명.
1976
11월 조연현 주간, 사장 취임.
1981
10월 김광수 전 사장 재취임. 조연현 전 사장 주간 유임. 감태준 편집장서리 임명.
11월 조연현 주간, 동남아 순방 여행 중 서거.
12월 주간 김윤성 취임.
1982
1월 감태준 편집장 임명.
12월 《현대문학》가로쓰기 단행.
1984
10월 윤재근 주간 취임.
1997
2월 감태준 주간 퇴임. 양숙진 주간 취임.
3월 《현대문학》자문위원(김화영, 이윤기, 최승호, 이남호, 이재룡, 안상수, 구본창, 안규철) 위촉
6월 《현대문학》(통권 510호) 표지, 편집체제 바꿈.
2000
3월 양숙진 주간, 대표이사로 취임(주간직과 겸직).
2001
2월 김영하 기획자문위원 위촉.
2002
1월 문화예술계 126명의 《현대문학》을 돕는 글 1월호에 게재.
4월 《현대문학》을 돕는 미술인 66인전을 갤러리 라메르에서 개최.
7월 김소연 기획자문위원 위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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