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이런 맛에 글을 쓴다

칠부능선 2013. 12. 3. 14:51

오랜만에 인터넷 서평들을 훑어봤다.

아는 분이 인사로 써준 몇 편의 후기에는 쓴맛이 없다.

덕담을 통해 힘을 넣어주는 것이다. 그것도 고맙다. 내게 필요한 사기충전이다.

고통이자 환희인, 갈증이자 샘물인, 변방이자 중심인.... 내 토로에 대해 스스로 좌절할 때 약이 된다.

 

오늘 발견한 서평 -

내 아픔을, 벌거벗음을 알아주는 이런 독자가 있어서.... 글을 쓰나 보다.

나를 위한 치유이지만, 누군가에게도 같은 느낌이란것은 참 고맙다.

 

 

-----------------------------------------------------------------------------------

---------------------------------------------------------------------------------------

 

 

아파야 힐링이다 '바람 바람' | 2013. 책과 함께 걷는다 2013-11-30 13:05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7495826 복사 트위터 보내기 Facebook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me2day 보내기

[도서]바람, 바람

노정숙 저
은행나무 | 2013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이미지나 구매버튼을 클릭해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애드온 2 안내

수필과 산문시의 경계 어딘가에서, 굳이 표현하자면 산문시보다 더 강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압도적인 수필을 만났다. 자신의 남편이었던 인간을 위해 털을 뽑아 옷을 지었다는 어떤 새에 관한 옛 이야기가 떠오를만큼, 피를 토하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을만큼 강렬하고 고통스런 책이었다. 무거운 것만이 혹은 아픈 것만이 질적 우위를 담보하느냐 묻는다면 문외한인 나로서는 할 말이 없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상이 심장을 압박하는 느낌이었다.

 

몇 년 전부터 가파를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보인 장르가 수필이었다. 그간 각양각색의 수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는 너무 단 인스턴트 커피를 마신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 드는 수필들도 적잖이 껴 있었다. 말랑말랑한 감상을 예쁘게 나열하고, 사진과 편집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책들은 읽고 나면 도리어 허무한 느낌을 주었다. 책 한 권이 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기대 없이 책을 읽지도 않기 때문이다. 설사 버리는 시간일지라도 시간을 내어 책을 읽을 때는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 나누기 위해서이지, 애들 장난같은 글을 읽으려고 물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쓰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 모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어쩌면 책에 더 엄격한 기준은 가지는지도 모르겠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꽤 고민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인데다 작가에 대한 안내도 그리 친절하지 않았으며, 단순한 에세이이라면 굳이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떨떠름한 마음으로 책을 대했다. 그러나 내 시큰둥한 마음이 바뀌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들지 않았다. 몇 편 넘기며 나도 모를 몰입 속에서 글을 읽어갔으니 말이다. 한 인간이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부터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벌거벗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깟 글이 무엇이기에, 그깟 책 한 권이 무엇이기에 이런 무모할 정도의 도발을 감행해야 하는가 말이다. 자신도 모르는 가면을 쓰고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만들어놓은 우아한 말투와 행동들을 벗겨버리는 강렬한 힘이 노정숙에게 있었다.

 

침대

 

 아테네의 뒷골목이다.

 

 아라베스크풍의 철문을 들어서는 순간 뒤통수를 당기는 한기를 느끼긴 했다. 요괴 문양이 쌍으로 새겨진 침대를 보면서 죽음의 낌새을 알아챘어야 했다. 그때 벽마다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나보다. 비릿한 냄새와 음울한 기운을 느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건장한 체격의 프로크루스테스를 어찌 당해내겠는가.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걸 잊었나. 짙은 눈썹에 우뚝한 코, 다정스러워 보이는 입매에 잠시 눈이 멀었나보다. 내 발로 걸어 그의 침대에 누웠으니.

 내 자라지 못한 키 때문에 침대의 아래위가 한참 남았다. 얼른 위로 당겨 눕는다. 나를 침대에 맞게 잡아당길 때는 아랫도리만 늘이면 좋겠다. 허한 목에 찬바람이 지나간다. 괜찮아 괜찮아, 주문을 외지만 쿵쾅거리는 가슴은 터질 것만 같다.

 죽음이 있어 다행이라고 떠들던 헛소리를 황급히 거둔다.

 

 

감상과 실체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글이다. 실체에 닿지 않은 나른한 감상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알게 하는 그녀의 담력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애들 장난같이 나른하고 애상적 정서에만 호소하는 글을 보다 이 글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나도 투정 많이 부리고 물정 모르는 헛소리 많이 했었지. 배부르지 않은데 배부른 체 행세하고, 아직도 끝없는 기갈이 나를 잡고 있음에도 마치 해탈한 것처럼 위장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글을 아포리즘 에세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소설이 될 만한 생의 내력도 간결하게 뭉치고, 시가 될 절정의 순간도 눙쳤다'고 말했다. 거기에 '틀을 벗었기에 가볍고 즐겁게 소통하리라 믿는다'는 말도 넣었다. 그 말에 값하는 글들이다. 더 좋은 글도 많았지만 나는 밑의 글에 마음이 갔다.

 

경의를 표함

 

 지갑에 참을 인忍자 석 자를 넣고 다닌다는 보일러공 시인 이면우. 돈을 참고 술을 참고 여자를 참고, 참 잘도 살아냈다. 쉰을 넘은 맑은 얼굴. 그가 참으며 빚어낸 저 정한 자식들 눈물겹게 살아서 내 안으로 잠겨든다.

 아직 한창인 식욕을 참고 사주에 타고난 역마살을 참고 대물림으로 받은 한량기를 참으며 예까지 겨우 왔다. 지나온 길 돌아보니 내가 마련한 것들 허름하여 미안하다. 이 몸도 쉽게 산 시간 없지만, 몸으로 산 그에게 오늘만은 깊이 엎드림.

 

 

직업으로 한 존재를 평가하는 은밀하고 음험한 기준이 얼마나 세속적이며 부끄러운지를 노정숙은 경의를 통해 폭로한다. 혹 어려울 때 이 사람을 아는 게 도움이 될까 싶어 자신도 모르게 줄서기에 끼어들며, 당장 드러나지 않는 됨됨이는 저 멀리 밀쳐두는 사람들이 바로 나였음을 자각케 하는 것이다. 한껏 폼 잡은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 경우가 별로 없었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그래서 그녀가 주목한 보일러공 시인은 그녀의 선물이자 무언의 가르침이다. 보일러공 시인을 통해 우리가 진짜 붙들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힐링이 난무하는 시대에 그녀의 글은 어쩌면 맞지않을런지도 모른다. 달래주기 보다 더 아프게 하고, 더 고민스럽게 했으며,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 기만을 여지없이 드러냈으니 말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처도 보이지 않은채 치료하려 하고, 고름도 짜지 않은채 연고를 덧발라 덮어버리려는 얄팍한 수작을 과감하게 폭로했으니 말이다. 가짜는 반짝이지만 진짜는 소박하다는 사실을 거꾸로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녀는 진짜의 속살을 보여준다. 진짜를 본 사람만이 진짜를 분별하고 가짜를 본 사람을 결코 알 수 없는 진짜의 세계를 그녀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럴듯한 가짜의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횡재다.

 

 

'놀자, 책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눈팔기>  (0) 2013.12.17
우수도서 선정  (0) 2013.12.11
오늘 조선일보  (0) 2013.11.26
채찍  (0) 2013.10.23
<바람, 바람 >  (0) 2013.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