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구절 절창인데 자꾸 되돌아가게 한다. 예전엔 잘 읽혀졌는데...
최승자 시인의 번역에 선입감때문인가.
그에 대한 무거운 느낌이 표지의 어둠과 겹쳐지는 건, 이것도 내 선입견일 것이다.
빛나는 문장에 푹 빠지지 못하고 잡념이 자꾸 끼어들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잡음어'라는 말인가. 하긴 내가 좋아하는 <잡설>과 형제같은 느낌이 들기는 한다.
나도 스토리가 있는 글이 편해졌나 보다. 며칠을 들고 씨름하듯 읽었다.
* 이 책에서 찬양하는 침묵은 '일체의 지성을 초월하는 평화' 바로 그것이다.
-가르리엘 마르셀
* 침묵의 모습
침묵은 그야말로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위대하다.
침묵은 존재한다. 고로 침묵은 위대하다. 그 단순한 현존 속에 침묵의 위대함이 있다. 침묵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말 속의 침묵
말이 침묵에서 태어난 뒤에도 말에는 침묵이 깃들어 있다.
말의 세계는 침묵의 세계 위에 세워져 있다. 말이 마음 놓고 문장들과 사상 속에서 멀리까지 움직여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밑에 드넓은 침묵이 펼쳐져 있을 때뿐이다. 그 드넓은 침묵에게서 말은 자신이 드넓어지는 법을 배운다.
침묵은 말에게는 줄타는 광대 밑에 펼쳐져 있는 그물과도 같다.
*형상과 침묵
형상(image)은 인간에게 말 이전의 현존을 상기시킨다. 그 때문에 형상이 그렇게도 인간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형상은 인간 내부에 현존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동경 때문에 형상 앞에서 자신의 본질을
방기할 때에는 인간은 심미적인 것에 의해서 위태로워진다. 그런 위험을 형상의 미가 고조시킨다.
* 잡음어
소음과 잡음어(雜音語)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소음은 침묵의 적이며 침묵과 대치해 있다. 그러나 잡음어는 침묵과 대치해 있지 않으며,
그것은 실로 침묵이 존재했다는 사실까지도 잊어버리게 만든다. 잡음어는 결코 어떤 음향학적 현상이 아니다.
그 음향악적 요소, 잡음어의 윙윙거림은 다만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이 그것으로 꽉 차버렸다는 표시일 뿐이다.
.....
삶이란 잡음어 속으로부터 떠오르는 것이며 죽음이란 잡음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
잡음어의 분주한 활동 속에서 사랑으로부터 혹은 죽음으로부터 혹은 한 아이로부터 하나의 광휘가 뿜어나온다.
그 광휘는 한 현상으로부터 다른 현상에게로 옮아가고 그리하여 그 광휘를 통해서 그 현상들은 더 이상
고독하지 않으며, 그 광휘 속에서 현상들은 서로 결합된다. 그 광휘를 통해서 사물들이 서로 함께 이야기를 한다.
말이 붕괴된 곳에서는 광휘가 근원적인 사물들의 언어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