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침묵

칠부능선 2013. 4. 29. 10:10

금요일 저녁 만남에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선물받았다.토요일 시골 이모님이 오셨다는 데 못 갔다.  한 분 남은 엄마의 동생인데...밤새 토하고 복통이 있어 어질머리를 떨치질 못했다. 덕분에 종일 책에 코 박고 있었다.요즘 너무 포식을 하긴 했다. 낮에도 트랭블루에서 거한 부페를 먹고, 저녁에 또 호박오리에 오디술. 속에서 거부할 만도 하다.

 

 

'주님, 당신은 아직도 침묵만을 지키고 계십니다. 이러한 삶 앞에서도 당신은 완강한 침묵을 지키고 계십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시대의 이야기다. 일본인들의 잔혹함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가톨릭은 피의 역사다.

 

부처의 자비와 하느님의 자비가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중생이 의지하고 매달릴 수 있는 부처님의 자비,이것을 구원이라고.

하지만 가톨릭교의 구원이란 하느님에게 의지하는 것 뿐 아니라 신도가 가능한 한 지켜야 할 강인함 마음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 강인함이 그 시대에는 순교이고, 지금 이 시대에는 행동이 아닐까.

 

신부를 배교하게 만드는 교활하고 영특한(?) 이노우에가 선교사에게 말한다.

받고 싶지도 않은 물건을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을 고마운 폐라고. 그 때문에 저 무지한 농민은 구덩이 속에 매달려 피를 쏟으며 죽어간다.

 

유다와 같은 인물 - 기치지로의 울부짖음이 왱왱거린다.

" 이 세상에는 말입니다. 약한 자와 강한 자가 있습니다. 강한 자는 어떤 고통이라도 극복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만,

저 같이 천성이 약한 자는 성화를 밟으라는 관리의 고문을 받으면.... "

 

강한 자는

"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간들은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이런 소리를 듣는다.

 

그러고 보면 종교도 주관적인 해석의 믿음이 아닌가.  

 

 

 

 

내  책장에 오래 전에 읽은 <침묵>이 침묵하고 있다. 책을 다 읽을때까지도 내용이 떠오르지 않으니,새롭게 읽었다. 침묵, 요즘 말이 많아진 내게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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