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노정숙
어머니가 목욕탕에서 쓰러지셨다. 눈이 몹시 붓고 검붉은 멍이 들었다. 아무런 조짐도 없이 느닷없이 일어난 일이다. 통증은 서서히 올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몸은 회복되겠지만 갑자기 쓰러진 것에 대한 두려움은 오래 남을 것 같다. 내 몸이 내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지난번 어머니와 병원순례를 할 때, 침침한 눈은 더 이상 안경이나 수술로 회복할 수 없다고 하고, 부쩍 심해진 요실금 현상은 수술을 할 나이가 넘었다며 별다른 처치를 해주지 않는다. 발목의 관절염은 약보다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마음 상해하는 어머니를 보며, 적극적인 처방을 받지 못한 것이 내 탓인 양 면구스러웠다. 80년을 넘게 부린 몸이 어찌 삐걱거리지 않겠는가. 헐거워진 뼈마디 마디와 힘을 잃은 근육을 어르고 달래며 함께 가는 수밖에 없다. 아직도 한창인 마음은 속도를 잃은 몸에 보폭을 맞춰야 한다. 어머니의 마음 나이는 불혹에나 다다랐을까. 용납할 수 없는 무딘 몸과 아직도 꿈꾸는 마음의 엇박자에 최선의 키를 잡아야 한다. 어머니는 요즘 퍼즐놀이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손과 뇌를 운동시키며 무뎌진 감각들을 불러오고 있다. 흩어진 그림을 모두 맞추고 난 뒤의 어머니 표정에서 언뜻 동심을 읽는다.
미셀 투르니에는 병원에서 심장비대의 판명을 받고 기분 좋은 일이라고 했다. ‘내게 암으로 인한 더러운 죽음이 아닌 심장으로 인한 깨끗한 죽음이 예정되어 있단 말이지’ 삼빡하게도 말한다. 암은 일찍 발견하면 완쾌되지만 그 과정을 보면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성공한 수술 후에도 방사선 치료나 항암치료를 받아본 사람은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더디게 맞는 죽음이 그가 말하는 더러운 죽음이란 말인가. 어릴 때, 할머니가 아주 느리게 죽음과 손잡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의 모습이 할아버지와 겹쳐져서인지 종종 아들을 남편으로 알았다. 오래 전의 기억은 생생한데 가까운 때의 기억은 망각 속에 있다. 그로인해 천진(天眞)과 노회(老獪)의 시간을 넘나들며 난감했던 일이 많았다. 하지만 내내 그런 건 아니었다. 가끔 반짝하고 정신이 들 때면 고맙다며 겸연쩍은 모습을 보여 우리를 더 짠하게 했다. 할머니는 정신을 놓은 채 10년 넘게 기대어 살다가 98세에 겨우 떠났다. 힘들게 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애통해 하는 어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면서 이별을 했건만 아쉬움이 없는 게 아니었다. 할머니의 더딘 죽음을 더러운 죽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심장 질환은 대부분 한 순간에 떠난다. 단번에 완결할 수 있도록 죽음이 한 발짝 앞에 늘 잠복해 있다. 그야말로 단숨에 떠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죽음도 아무런 징후나 예고 없이 삽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혈압약에 빈혈약까지 열심히 챙겨먹는 것을 보면 내게도 어떤 공포가 있기는 한 게다. 오래 전부터, 부르시면 언제든 ‘네’하고 가겠다던 말이 객쩍다. 어떤 이별도 넉넉한 시간이란 없다. 죽음 앞엔 오직 황망함과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건강백서를 보면, 뇌가 튼튼하고 몸에 적당한 근육이 있으면 백세 이상 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몸과 마음에 불소통, 비호감, 몰이해 같은 부정의 시간이 많아지면 허락된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튼튼한 뇌의 조건은 쾌감을 느낄 줄 아는 긍정적인 생각과 플러스 발상이라는 걸 아셨을까. 어머니는 몸이 어둔해지고부터 마음이 바뀌셨다. 소통과 호감과 이해로 일관하신다.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 하던 불만과 욕심을 내려놓으신 듯하다. 새로운 시간에 적응하는 모드로 변하셨다. 다행이다.
아무리 호기를 부려도 나 역시 어머니의 수순을 밟을지도 모른다. 내 육신이 내 말을 거역하고 허둥대는 시간이 올 것이다. 벌써부터 입안에서만 맴돌고 완성되지 않는 말들의 동태를 보면 그렇다. 머리가 멍해진 건 오래전이다. 냉장고를 열고 우두커니 서 있다. 무얼 꺼내러 열었는지. 베란다에 나가 왜 왔는지 한참을 서 있다. 일을 하는 시간보다 무언가를 찾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을 보면 뻔하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
빠르건 더디건 우리가 다다를 곳이 정해있다. 누가 먼저 그 시간에 다다를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단기전이 될지 장기전이 기다릴지 아무도 모른다.
<대한문학> 2012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