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노인은 나의 미래

칠부능선 2012. 3. 18. 01:21

 

노인은 나의 미래

노정숙

 

 

  여든이 넘은 노인의 몸을 씻겨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선배가 있다. 그 선배는 노인수발의 후유증으로 기동력을 잃었다.

나도 어머니의 벗은 몸을 마음대로 본 지 3년이 넘었다. 로댕의 조각 <한때는 아름다웠던 투구공의 아내> 바로 그 모습이다. 거친 질감의 검은색 브론즈 속 노인은 을씨년스러운 몰골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뽀얀 피부에 적당한 살집은 면구스러움을 덜어준다. 목욕 후 몸에 바디크림을 바르고 나면 적당히 윤기까지 흐른다. 불그레한 뺨이 흡사 어린아이 같다. 무너져 내리는 육체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제 늙은 몸에 익숙해졌나 보다.

  어머니의 깔끔하고 바지런한 습성은 간데없고, 연신 슬로비디오로 움직인다. 발톱을 깎는 순간, 나는 비로소 가슴이 저릿해진다. 언제 이렇게 굳어졌을까. 딱딱한 각질이 잘려나가기를 거부한다. 엄지발가락 깊이 뿌리를 내린 듯 앙버티고 있는 모습이 노인 특유의 아집 같다. 억지로 헤집어 잘려나갈 때도 뚜둑, 둔탁한 음색을 내며 겨우 떨어진다. 살아 있는 것은 그것의 생명력이 가득할수록 따뜻하여 부드럽고 연하다. 뻣뻣하고 딱딱해지는 건 생명력을 잃어가는 증후다. 이 발톱도 처음에는 여리디 여렸을 텐데…. 목 뒤로 찬바람이 지나간다.

 

  영화 <인 타임In Time>에서는 어머니나 딸,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모두 젊은 얼굴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25세가 되는 날부터 노화를 멈추고, 팔뚝에 잔여시간 1년의 타이머가 작동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용할 시간을 벌기위해 죽을힘을 다해서 노동을 한다. 모든 노동의 대가는 시간으로 주어진다. 시간이 화폐다. 커피는 4분, 간단한 점심은 30분이 빠져나간다. 장거리 버스요금은 2시간이다. 버스요금이 모자라서 뛰어가다가 죽기도 한다. 팔에 새겨진 디지털 시간은 퍽퍽 바람소리를 내며 빠져나간다. 이곳에서도 소수의 거대한 세력은 대대로 시간을 축적해두고 영원히 살 수 있다. 스포츠카 값은 59년, 카지노입장료가 1년, 호텔숙박료가 2달이다. 시간의 품새가 다르다. 시간공장 노동자의 임금은 예고 없이 낮아지고, 물가는 사정없이 오른다. 부익부 빈익빈이 극에 달한다.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이 나오고, 반란이 시작된다. 상상의 세계에서도 먹이사슬은 치열하다. 그러나 치열한 삶의 흔적이 없는 얼굴과 몸은 공허하다.

 

  25세에서 더 이상 늙지 않는 세상, 지금이 그 가상의 시대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앞으로 살아 내야할 시간이 우리가 모르게, 표시 없이 흐르는 것은 또 얼마나 고마운가. 햇살에 잘 숙성된 검은 피부에 굵은 주름은 정직한 삶의 훈장이다. 하얀 얼굴의 미간 세로주름은 아프거나 예민한 성격으로 자주 찡그린 흔적이다. 코 양옆에 비대칭으로 생긴 주름은 말과 행동이 다를 때의 면구스러움이 쌓인 결과다. 많이 웃어서 잡힌 눈꼬리와 입가의 둥근 주름은 자연스러우면서 친근감이 있다.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표정과 근육의 움직임으로 전한다. 늙지 못하는 얼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없다. 그 시절에 배고픈 것 모르고 들일도 해보지 않았다. 맏딸이라고 아버지가 손수 머리를 빗겨주고 연필을 깎아서 필통에 가득 채워주었다.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통과의례조차도 건너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부부의 살뜰한 정을 나누지 못했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속에는 늘 찬바람이 불었다. 밥이 아닌 정이 아쉬웠을 어머니의 젊은 날을 생각하면 고운 모습이 오히려 애처롭다.

  나는 아무래도 어머니처럼 주름 없는 얼굴로 늙을 자신이 없다. 들끓는 속내를 혼자 다독이지 못하고 시답잖은 글로 풀고 있는 걸 보면 그렇다. 수선스러운 감정들이 얼굴에 드러나 몇 줄 깊은 주름이 생긴다면 내 고뇌의 훈장으로 알리라.

  노인은 내 미래다. 몸이 굳기 전에 마음이 먼저 굳어버릴까 염려된다. 행여 모든 것을 통달한 듯 체념한 듯, 흔들림 없는 바위가 될까 두렵다. 그동안 연륜에 어울리는 지혜와 품위를 외쳐대던 것이 멋쩍다. 어느 연륜에 도달해야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몸이 자유롭지 못한 노인에게 지혜와 품위가 가당한가. 오감 중에 가장 늦게 닫히는 것이 귀(耳)라면 그것이야말로 지혜다. 자연이 전하는 말과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목욕물의 온도만큼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다면 그것이 품위일 것이다. 단정한 모습에 감정 표현을 잘하는 노인에게서도 서글픔이 읽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85세 어머니의 몸을 씻기면서도 나는 아직 인생에 대해 마땅히 할 말이 없다.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에세이문학> 201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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