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향을 엿보다
조용미
이월에 집으로 가져온 서향이 열흘 지나 꽃을 피웠다
단단하던 꽃망울이 천리 밖에서 내가 들은 격렬한 슬픔의 노랫소리를 함께 들은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한꺼번에 꽃을 피워올리겠는가 내 목메임이 멀리 네게로 전해졌구나
바깥은 홍자색 안쪽은 흰색의 꽃잎 같은 네 갈래로 갈라지는 꽃받침 조각들이 꽃대 끝에 둥근 별처럼 떠 있다
백리향, 천리향, 만리향 이런 다정한 이름들과 함께 고요하던 내 방은 향기로 어지러워졌다.
다음 날 다른 줄기에서 흰 꽃이 피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삼월의 눈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분홍 꽃 이어 흰 꽃을 밀어올리는 뜨거움을 종일 가지런한 피아노 곡을 얹어두면 누를 수 있을까
가까이 다가가면 향기로 숨이 가빠온다
숨이 멎을 듯한 풍경들은 늘 담묵과 농묵에 상관없이 기어코 내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야 만다
흰 꽃과 분홍을 마주 피워올리며 나의 봄을 엿보려는 저 천리향의 미열은 봄눈에 좀 가라앉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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