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간 / 오규원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사내가
간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뒷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의
모가지 하나가
여러 사내 어깨 사이에 끼인다
급히 여자가 자기의 모가지를 남의 몸에
붙인다 두 발짝 가더니 다시
사람들을 비키며 제자리에 붙인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여자의
핸드백과 한 여자의 아랫도리 사이
하얀 성모 마리아의 가슴에
주전자가 올라붙는다 마리아의 한쪽 가슴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놀란 여자 하나
그 자리에 멈춘다 아스팔트가 꿈틀한다
꾹꾹 아스팔트를 제압하며 승용차가
간다 사내와 여자들이 뭉개지며 감동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나는 시간을 따로 잘라내어 만든다
'시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자 / 이정록 (0) | 2006.09.15 |
---|---|
아무도 모른다 / 김사인 (0) | 2006.08.31 |
프란츠 카프카 / 오규원 (0) | 2006.08.03 |
얼룩 / 강인한 (0) | 2006.08.01 |
풍경의 깊이 / 김사인 (0) | 2006.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