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거리의 시간 / 오규원

칠부능선 2006. 8. 3. 22:07

 

 

      거리의 시간 / 오규원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사내가

   간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뒷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의

   모가지 하나가

   여러 사내 어깨 사이에 끼인다

   급히 여자가 자기의 모가지를 남의 몸에

   붙인다 두 발짝 가더니 다시

   사람들을 비키며 제자리에 붙인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여자의

   핸드백과 한 여자의 아랫도리 사이

   하얀 성모 마리아의 가슴에

   주전자가 올라붙는다 마리아의 한쪽 가슴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놀란 여자 하나

   그 자리에 멈춘다 아스팔트가 꿈틀한다

   꾹꾹 아스팔트를 제압하며 승용차가

   간다 사내와 여자들이 뭉개지며 감동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나는 시간을 따로 잘라내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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