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다는 말
김명기
마당가 배롱나무 두 그루에 꽃이 한창이다
한 그루는 장날 뿌리째 사다 심었고
한 뼘쯤 더 자란 나무는 가지를 베어 꺾꽂이했다
뿌리째 심은 나무는 사방 고르게 가지를 뻗어 꽃 피우고
베어 심은 것은 뿌리내리며 가지를 뻗느라 멋대로 웃자랐다
그중 제일 먼저 뻗은 가지는 땅을 향해 자란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을 힘 다해 살았겠지
기댈 데가 없다는 건 외롭고 위태롭다
죽을 수가 없어 죽을 힘 다하는 생
뿌리가 얼마나 궁금했으면 아직도 땅을 향해 자라날까
무심코 내뱉는 근본 없다는 말에는 있는 힘 다해 뿌리내리며
허공을 밀어 올리는 수없는 꺾꽂이 같은 삶이 깊숙이 배어 있다
'시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0) | 2022.03.13 |
---|---|
믿었던 사람 / 이덕규 (0) | 2022.03.13 |
시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 이어령 (0) | 2022.03.05 |
녹색 감자 / 배경희 (0) | 2022.02.14 |
말랑말랑한 그늘 / 박희정 (0) | 2022.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