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두부
서숙희
두부를 만지는 두부 같은 저녁은
적당하게 무르고 적당하게 단단하다
꾹 다문, 입이 몸이고 몸이 입인 흰 은유
으깨져 닫혀버린 축축한 기억들
경계도 격정도 고요히 순장되어
창백한 무덤으로 앉은 한 덩이 직육면체
잔뼈처럼 가지런한 알전구 불빛 아래
표정 없이 저무는 식물성 적막 속으로
수척한 자폐의 저녁이 허기처럼 고인다
-《시조21 》202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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