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못난이 백서

칠부능선 2012. 12. 27. 18:57

 

못난이 백서

 

노정숙

 

 

 

 

  싹둑, 머리를 커트했다. 20대 스타일이다. 그 푸르던 시절에도 긴 머리 찰랑이며 여성미를 뽐내보지 못했다. 선머슴처럼 짧아진 머리를 보며 남편은 그게 뭐냐고 난리다. 얼굴이 함지박만 해 보인다나. 요즘 얼굴 작게 보이는 게 대세인데, 못생긴 얼굴을 다 드러냈다고 핀잔이다. 이 남자에게 립서비스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자기는 정직하다며 매운 말만 한다. 내 참, 못 생긴 것 다 아는데도 호시탐탐 기회를 잡아서 상기시킨다. 집에서 헤어밴드로 머리를 올려붙일 때마다 그런 스타일은 잘 생긴 사람이 하는 거라나. 이렇게 말본새 없는 사람과 삼십년을 넘게 살다보니 나도 많이 여물어졌다. 웬만한 말폭탄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사실은 못생겼다는 데 대해서 면역이 있다. 어릴 때 오빠들한테 늘 듣던 말이기도 해서다. ‘우리 못난이’ ‘빈대코가 내 별명이었다. 아들 셋에 10년 만에 태어난 늦둥이 딸이다. 바닥에 내려놓기도 아까워했다지만 귀한 것이 예쁜 것에 묻어갈 수는 모양이다.

  오래전에 고전소설 박씨전을 읽으며 눈이 번쩍 뜨였다. 너무 못생겨서 남편에게 외면당한 박씨 부인은 지혜롭고 용감하여 남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해결사가 되어줄 뿐 아니라,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도 슬기로 몰아낸다. 졸렬한 행동을 한 남편을 그냥 용서하지 않고 사과를 받아낸 후에 받아들인다. 못남으로 인한 온갖 박대를 의연히 이겨낸 후 얼굴의 허물이 벗겨져 미인이 되는, 반전이 통쾌한 이야기다. 뛰어난 학식과 재주가 많은 당당한 이 여인을 나의 마음 속 사부(師父)로 삼았다.

  시간의 풍화를 견디고 살아남은 고전들, 그것들의 깊은 숨결을 가까이 하면 언제나 숙연해진다. 이런 숙연함이 나를 키우고 또 절망에 빠지게도 하지만, 나들이 가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놓지 않듯이 검질기게 잡고 늘어진다.

  딸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다. 친구들에게 넌 크면서 엄마랑 똑같아 지네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차라리 날 때려라로 받아치더니 급기야 쌍꺼풀수술을 해서 작은 눈을 확, 키우고서 만족해한다. 순한 눈매가 사나워졌는데 그게 좋단다.

 행여나 내가 성형을 한다면 존재감 없는 코다. 콧대를 확실하게 높이면 왠지 지적인 욕구가 충족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행히 그 욕망이 크지 않아 아직 큰돈을 축내지는 않았다. 요즘은 주사 몇 대로도 오똑한 코가 만들어진다니 속으로 씨익 웃는다. 못났다는 말을 견딜 수 없는 때가 오면 손을 보리라.

  겉모양의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다. 마음이나 굳은 의지로 해결되지 않을 때 성형도 필요하다. 아직은 청춘이 나이에 있지 않고 마음가짐에 있다는 말을 떠올리면 저절로 그윽해진다. 그러나 늙음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어지면 삶의 연륜인 주름을 없애고 처진 피부를 올려붙이는 것도 좋다.

  남이 말하는 못남과 내가 느끼는 못남의 차이를 생각한다. 스스로 기특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으면 늘 못난 사람이 된다. 스스로를 뻑, 가게 칭찬하는 자뻑이 필요하다. 아직 살아내야 할 시간이 만만찮으니 자기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세뇌시켜야 한다. 수필은 사람, 그 자체가 거리이기 때문이다. ‘천성스러운 유머와 보석 같은 위트탁마된 세련을 주문하면 주눅이 든다.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솔직한 사람이 되면 그만이라고 다독인다.

잘난 글에 대한 욕망이 들끓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글 성형에 매달린다. 글 성형은 전문가의 손을 빌릴 수 없는 데에 문제가 있다. 못난이라는 말은 이겨낼 수 있어도 내 글이 못난 것에는 낯 뜨겁게 날을 세운다. 세상의 잣대는 튀어야 한다고, 확실하게 돋보여야 한다고 몰아붙여도 늘 한 박자 늦게, 내 깜냥대로 나간다.

  칠렐레팔렐레 떠도는 마음의 굴곡이나 울뚝불뚝 치솟는 대책 없는 감상마저도 소중히 여긴다. 태생적 덜렁기가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일이건 사람관계든 마음을 다하고 나서 잊어버리려고 한다. 결과는 내 몫이 아니라며 의연한 척 호기를 부린다. 같은 행동에도 세월이 지나면 주위의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미숙했던 일도 함께 한 세월이 진심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인정받으려고 하면 상처가 될 수 있다. 나의 평가를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믿는 것도 좋은 방책이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 타고난 성정이다. 지어먹은 노력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생긴다. 어쩌겠는가. 비판적 시각을 키우는 데 날카로운 마음을 이용해 보고, 가슴 속 깊은 상처는 진솔하게 풀어내기만 하면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 제 울림통만큼 소리를 낼 것이다.

  남편이 술에 잔뜩 취해서 오는 날이면 하는 말이 있다. “내 일생일대의 행운은 당신이랑 결혼한 거야다음날 필름이 끊어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그 본새 없는 말폭탄들을 다 용서한다. 어느 날 쨍한 한 편의 글이 그동안 내 서툰 말놀이 - 여물지 못한 고백을 모두 상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나도 기대한다.

  속 시끄러운 어느 날 또 머리를 쌍둥, 자를 것이고, 솔직하다는 남편에게 더 못나 보인다는 지청구를 들을 것이고, 그래도 나는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언젠가 나도 쌈박한 글줄로 못난이의 허물을 벗을지도 모른다. 박씨 부인의 해피엔딩이 나의 시작이다.

 

 

<수필세계 2012 가을호>

 

                        [2013년 비평가가 뽑은 한국의 좋은수필]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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