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어의 혼탁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불순함의 옹호자이기 때문이다.
불순함을 옹호한다는 것은 전체주의나 집단주의의 단색 취향,
유니폼 취향을 혐오한다는 것이고,
자기와는 영 다르게 생겨먹은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른바 토박이말과 한자어와 유럽계 어휘가 마구 섞인
혼탁한 한국어 속에서 자유를 숨쉰다.
나는 한문투로 휘어지고 일본 문투로 굽어지고 서양 문투로 닳은
한국어 문장 속에서 풍요와 세련을 느낀다.
순수한 토박이말과 토박이 문체로 이루어진 한국어 속에서라면
나는 질식할 것 같다.
언어순결주의, 즉 외국어의 그림자와 메아리에 대한 두려움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박해, 혼혈인의 혐오, 북벌北伐, 정왜征倭의 망상,
장애인 멸시까지는 그리 먼 걸음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순화'의 충동이란
흔히 '죽임'의 충동이란 사실이다.'
-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중에서
* 10년도 되기 전에 그가 예견했던 사태가 일상이 되었다.
오늘 나는, 조금 더 부드러워진, 아니 조금 순화된 그의 모습도 예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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