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제기(題記) / 루쉰

칠부능선 2010. 1. 6. 16:29

 제기(題記)

- 루쉰


  여기 형식이 전혀 다른  것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 모양으로 만든 연유를 말하자면 아주 그럴사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거의 20년 전에 쓴 이른바 글 몇 편을 우연히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쓴 것이란 말인가? 나는 생각했다. 읽어 보니 틀림없이 내가 쓴 것이었다. 그것은 『하남(河南)』에 보냈던 원고였다. 그 잡지의 편집 선생은 이상한 기질이 있어 글은 길어야만 했고, 길수록 원고료는 더 많았다. 그래서 「마라시력설(摩羅詩視力設)과 같은 것은 그야말로 억지로 긁어 모은 것이다. 요 몇 년 사이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괴이한 자구를 짓고 옛 글자를 쓰기를 좋아했으니, 이는 당시 『민보(民報))』의 영향을 받았다. 지금 조판인쇄의 편리를 위해 조금 고쳐 놓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그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렇게 어색한 것들이라 만약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면 나는 아마 “미련없이 버려라”하고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래도 이들을 남겨두고 싶었고, 또 “나이 오십이 되어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하지 않고 늙을수록 더 나아진다고 생각하였다. 그 글에서 언급한 몇몇 시인은 지금까지도 다시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것도 내가 차마 옛 원고를 버리지 못하는 작은 이유 중 하나이다. 그들의 이름은 예전에 얼마나 나를 격앙시켰던가. 민국이 성립된 후 나는 곧 그들을 잊어버렸지만 뜻하지 않게 지금도 그들은 때때로 내 눈앞에 나타나곤 한다.

  그 다음은, 물론 보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 글을 증오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말을 함에 그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혀 반응이 없는 것보다야 그래도 행복한 것이다. 세상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지만, 오로지 스스로 마음 편한 세계를 만들어서, 그들에게 약간은 가증스러운 것을 보여 주어 그들에게 때때로 주금은 불편하게 느끼게 하고, 원래 자신의 세계도 아주 원만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려 한다. 파리는 날며 소리내지만 사람들이 그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날며 소리낼 수만 있다면 기어코 날며 소리내려 한다. 내 가증스러움은 종종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술을 끊고 어간유를 먹는 것은 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도리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대부분은 바로 나의 적 - 그들에게 좀 점잖게 말한다 해도 적일 뿐이다. - 을 위해 그들의 좋은 세상에다 얼마간 결함을 남겨 주려는 것이다. 군자의 무리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왜 사람을 죽이고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군벌을 욕하지 않느냐? 이 역시 비겁한 짓이다.” 그러나 나는 유인하여 죽이려는 이러한 수법에 넘어가고 싶지 않다. 목피도인이 “몇 년 동안 집안의 부드러운 칼로 목을 베니 죽음을 느끼지 못했다”고 잘 말했듯이, 나는 오로지, 자칭 ‘총이 없는 계급’이라고 했지만, 실은 부드러운 칼을 들고 있는 요괴들을 질책하려 한다. 가렬 필화를 당한다면 여러분은 그들이 여러분을 열사로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 때가 되면 달리 비아냥거리는 말이 있다. 믿지 못하겠으면 그들이 3․18 참사 때 죽은 청년들을 어떻게 비평했는지 보면 된다.

  이 밖에 내 스스로에게 하찮은 의미도 조금은 있다. 그것은 바로 아무래도 생활의 일부 흔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비록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정신은 되밟을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모질게 끊어버리지 못하고 찌꺼기들을 주워 모아 자그마한 새 무덤을 하나 만들어 한편으로 묻어 두고 한편으로 아쉬워하려 한다. 머지 않아 사람들이 밟아 평지가 되더라도 그야 상관하고 싶지 않으며 상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몇몇 내 친구들에게 나를 대신해 원고를 수집 ․ 필사하고 교정을 보면서 돌아올 수 없는 많은 세월을 써 버린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 보답이란, 이 책이 인쇄되었을 때 혹시 여러 사람에게 진심으로 기뻐하는 웃음을 널리 자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할 수 있는 것뿐이다. 다른 과분한 바람은 조금도 없다. 기껏해야, 넓고 두터운 대지가 작은 흙덩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떨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이 책이 잠시 책판매대 위의 책무덤에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다소 본분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인들의 사상과 취미는 현대 다행히도 이른바 정인군자(正人君子)들에 의해 아직 통일되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오로지 황제의 무덤을 참배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버려진 무덤을 추모하기를 좋아하는데, 어찌되었건 잠깐이라도 기꺼이 한번 살펴보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아주 만족스럽다. 그런 만족은 부자의 천금을 얻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1926. 10. 30.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밤

                                                                                                   하문(厦門)에서 루쉰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