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
- 이면우
퇴근길 버스정류장 가는 길
뒹구는 후박나무 잎새에 가만히 발 겹쳐보네
구두보다 길고 내 쪽배처럼 생긴 누런 잎
한 발로 딛고 남몰래 휘청거리네
그렇지, 물 위에 닫는 첫발은 늘 마음 먼저 출렁이지
그때 이맘때 이른 저녁 멀고 빈방에 불 켜두고
만삭인 아내 쪽배에 태워 노을 속으로 힘껏 저어 가
잠시 밝은 호수 가운데 두런두런 하노라면
물결이 쪽배를 오두막 가까이 되돌려주었지
그 쪽배 지금 호수 바닥에서 혼자 서늘하겠네
그때 우리 노 놓고 무릎 맞대 무슨 말 주고받았던가
하나도 기억 못하네 가을 저녁, 버스는 더디 오고
호수 쪽 하늘에 자꾸 눈길 빼았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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