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삶은 감자 / 안도현

칠부능선 2006. 7. 19. 23:24

 

 

      삶은 감자  /  안도현

 

 

 

 

   삶은 감자가 양푼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머리 깨끗이 깎고 입대하는 신병들 같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중이다

   감자는 속속들이 익으려고 결심했다

   으깨질 때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고

   찜통 속으로

   눈을 질끈 감고 익었다

   젓가락이 찌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

   내주고, 김치가 머리에 얹히면

   빨간 모자처럼 덮어쓸 줄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입에 넣고 씹어봐라

   삶은 감자는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각오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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