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이산하
며칠째 눈이 내려 수의처럼 세상을 계속 덮는다.
나는 내가 몇 초 뒤에 뭘 생각할지도 모르고
내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죽을 때를 알아 4년 전부터 수의를 짜고
마침내 그날이 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준
‘백 년 동안의 고독’ 속의 아마란타처럼
나는 아직 수의를 짜지도 못하고
설령 그날이 와도 내가 가진 것이 없으니
먼지 같은 내 여윈 살 외에는 나눠줄 수가 없구나.
다만 아마란타처럼 내 많은 지인들이
먼저 죽은 이들에게 보낼 고해성사 편지를 써오면
내가 차질 없이 전해주겠다는 약속만은 꼭 지키리라.
수의가 세상을 돌돌 말아 관 속에 넣고 못을 박는다.
* 인문교양 월간지 <유레카> '이산하 시인의 짧은 시' 연재(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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