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재 옛길
강정숙
물쑥대 우거진 갈대밭을 끼고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 걷고 달리는 길 끝에
오래 묵은 버드나무 한 그루 쓰러져 있다
마치 세기말의 풍경같이 디귿자로 누운 나무는
둥치는 썩고 잎사귀만 살아있다
저 수많은 잎사귀는 나무가 내뱉는 신음 같아
그 앞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오금이 당긴다
내 죄가 아니지만 내 죄인 것만 같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데도 살아보겠다고 안감힘 쓰는
임종 앞둔 병자 같고
일주일에 세 번 혈액 투석을 받으며
겨우겨우 연명하는 그녀 같다
이 세상 하직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은 나무를 위해
넘치는 곡哭으로 비통을 달래주는 공릉천,
다음 생을 기약하듯 습지를 적신다
버드나무 가지마다 바람이 인다
올해는 또 어떤 비가 내려
버드나무 한 그루 쿵, 넘어뜨리려나
잊혀져 가는 옛날처럼
서서히 사라져가는 나의 옛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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