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사랑
권혁소
낡아보니
사랑할 나이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겠다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만큼만 사랑을 할 뿐 그런 건 없다, 하물며
이제 막 헤엄치기를 마치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그대에게야
말해 뭣 하겠는가
사랑을 잃고 시를 얻다니,
이런 행위가 삶을 경외하는 마지막 자세라고
슬픈 자위를 해보긴 하지만 더 많은 상처를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휘파람을 불어주는 일도 버겁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사랑이 저문다
숨자, 어느 숲에든 몰래 들어가
조용한 바람에도 격하게 이파리를 떠는
관목灌木이라도 되자, 그대와 나
비록 실패하는 사랑에 매진했으나 아직
세상엔 못다 한 사랑이 많이 남았으니
사랑이 진다고 싸움을 부를 일만은 아니다
저무는 일, 때로는 고요할 따름이다
시집 <우리가 가엾다> 에서
'시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 박경리 (0) | 2021.08.10 |
---|---|
등 / 이정록 (0) | 2021.07.29 |
악의 평범성2 / 이산하 (0) | 2021.07.19 |
추모 / 이산하 (0) | 2021.07.19 |
가장 위험한 동물 / 이산하 (0) | 2021.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