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지는 사랑 / 권혁소

칠부능선 2021. 7. 26. 20:41

지는 사랑

권혁소

 

 

낡아보니

사랑할 나이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겠다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만큼만 사랑을 할 뿐 그런 건 없다, 하물며

이제 막 헤엄치기를 마치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그대에게야

말해 뭣 하겠는가

 

사랑을 잃고 시를 얻다니,

이런 행위가 삶을 경외하는 마지막 자세라고

슬픈 자위를 해보긴 하지만 더 많은 상처를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휘파람을 불어주는 일도 버겁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사랑이 저문다

숨자, 어느 숲에든 몰래 들어가

조용한 바람에도 격하게 이파리를 떠는

관목灌木이라도 되자, 그대와 나

비록 실패하는 사랑에 매진했으나 아직

세상엔 못다 한 사랑이 많이 남았으니

사랑이 진다고 싸움을 부를 일만은 아니다

저무는 일, 때로는 고요할 따름이다

 

 

시집 <우리가 가엾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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