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시인하다 / 이령

칠부능선 2018. 6. 11. 04:17

  

   시인하다

   이령

 

 

  난 말의 회랑에서 뼈아프게 사기 치는 책사다

  바람벽에 기댄 무전취식 속수무책 말의 어성꾼이다

  집요할수록 깊어지는 복화술의 늪에 빠진 허무맹랑한 방랑자다

 

  자 지금부터 난 시인하자

 

  내가 아는 거짓의 팔 할은 진지모드

  그러므로 내가 아는 시의 팔 할은 거짓말

  그러나 내가 아는 시인의 일 할쯤은

  거짓말로 참 말하는* 언어의 술사들

 

  그러니 난 시인詩人한다

 

  관중을 의식하지 않기에 원천무죄지만

  간혹 뜰에 핀 장미엔 미안하고

  해와 달 따위가 따라붙어 민망하다

  날마다 살패하는 자가 시인 **이라는 것이 원죄이며

 

  사기를 시기하고 사랑하고 책망하다 결국 동경하는 것이 여죄다

  사기꾼의 표정은 말의 바깥에 있지 않다

  그러니 詩人의 認은 속속들이 참에 가깝다

 

 

   * 장콕토

   **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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