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고목 / 복효근

칠부능선 2018. 3. 27. 09:53

          고목

   복효근


 

오동은 고목이 되어갈수록

제 중심에 구멍을 기른다.

오동뿐이랴 느티나무가 그렇고 대나무가 그렇다

잘 마른 텅 빈 육신의 나무는

바람을 제 구멍에 연주한다.

어느 누구의 삶인들 아니랴.

수많은 구멍으로 빚어진 삶의 빈 고목에

어느 날

지나는 바람 한 줄기에서 거문고 소리 들리리니

거문고 소리가 아닌들 또 어떠랴.

고뇌의 피리새라도 한 마리 세 들어 새끼칠 수 있다면

텅 빈 누구의 삶인들 향기롭지 않으랴.

바람은 쉼없이 상처를 후비고 백금칼날처럼

햇볕 뜨거워 이승의 한낮은

육탈하기 좋은 때

잘 마른 구멍하나 가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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