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준비
노정숙
구름밭 아래 502호에는
한바탕 빛을 발하고 기진한 별들이 산다
창가의 쪽별
중얼중얼 혼잣말을 달고 산다
해독 불가능한 별똥별의 언어,
때때로 엄마에 가까운 소리가 들린다
코에 줄을 단 갸름한 별이 누워있다
가끔 투명한 줄을 잡아당겨 생각을 전하면
하늘 난간에 손이 묶인다
아직 통통한 햇별은 자기 몸을 탕탕, 치며
팔운동을 한다
오줌줄이 밖으로 나와 있는 그는
연신 제 마음을 친다
벽 쪽에 웅크린 눈 맑은 총총 별
흘러내린 이불을 당겨주니 고마워요 한다
아직 빛의 힘이 남아있다
별들 숟가락을 놓은 지 오래다
링거를 꽂고 영양 캔을 투입하고
고운 죽을 밀어 넣는다
지상의 별인 그들에겐
하늘로 이사를 가야하는 숙제만 남았다
부러운 죽음
노정숙
담배와 커피를 달고 살던 외숙모
폐암이 왔다
새 친구 달랠 생각 않고
하던 대로 그대로
밤농사 논농사, 가을걷이 끝내고
6남매 집집을 며칠씩 돌아보며
죽 대신 커피와 담배로 속을 채우더니
입원한 이틀 만에 떠났다
여장부 성질 그대로
대쪽처럼 깔끔하게 단방에 가셨다
향년 85세다
<창작산맥 >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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