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산자의 넋두리

칠부능선 2018. 3. 28. 00:52

 

  엄마,

  엄마가 '새댁'이라고 하신 시어머니가 엄마네 동네로 이사했어요.

  엄마한테 '바보같다' 고 하시던 어머니는 당신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사셨네요. 

  엄마에 비해서 가진 것이  많아도 쓰지 못하던 어머니, 모으는 게 취미였죠. 모아놓은 것도 폼나게 써보지도 못하셨지요.

  가진 것 없어도 다 쓰면서 베풀고 산 엄마, 먼저 쓰는 자가 임자라는 생각을 하게 했죠.

  어머니는 말년에 보행의 자유를 잃어버리고서야 잘 웃으시며 '미안하다, 고맙다' 와 친해졌지요.

 

  어머니,

  삼우제날 작은 아들이 얼마나 성토를 하는지 많이 면구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를 자주 찾아 뵈었지요.

  어머니는 오직 큰아들, 큰며느리, 딸과, 중석이만 생각하셨다고요. 그러고 보니 저희에게는 늘 작은 아들, 작은 며느리, 손자들 걱정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게 많이 속상한 일이었다네요. 전 어머니가 그러실 때 좀 서운했지만, 그러려니... 했지요.

  아버님은 또 왜 그리 쌀쌀하셨을까요. 두 아들 다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없네요. 듣기도 민망한 이야기들이 많네요.

  아버님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시던 게 20년도 더 전이네요. 아버님은 아직 잘 하고 계세요. 자전거 운동도 하고, 식사도 맛있게 하시지요.

  어머니 가시고 확연히 기운이 빠지신 아버님께 제가

  "아버님 오래 사세요. 누님 보내드리고 가셔야지요". 그랬더니 "고맙다" 하시네요.

  94세 큰고모님은 70세 딸 보다 더 잘 걸으세요. 우리집 계단도 후다닥 올라오시지요. 팔을 휘져으면서 걸으시잖아요. 친할머니처럼요.

  어머니와 30년을 살았네요. 20년 넘게 어머니가 거의 주부로 사셨고, 어머니 쓰러지시고 나서야 제가 살림을 다 하네요. 

  제가 살림을 하면서  "잘하지요, 참 잘하지요", 하며 자랑질을 했지요. 그러면 어머니는 "넌 어쩜 그리 일을 쉽게 하니" 이렇게 칭찬하셨지요.  

  어머니 요양원 가시고는 살림하기가 재미없어졌어요.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요.

  그래서 이제는 대충 살려고 해요. 어머니가 그러셨잖아요. 아버님께 잘 하지 말라고요. 

  철따라 여행다니고 글 쓴다고 나다니는 이 날라리 며느리를 잘 봐주시고 오래 이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으로 좋은 때 가셨다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자식걱정 그만 하시고,. 근래의 모습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제발 그곳에서는 편안히 계세요.  

 

 

 

 

 

 

 

산자끼리 엄마, 어머니 얘기하며 진하게 한잔 했습니다. 술을 부르는 음식이에요.

친정에서는 술도 음식이라고 했죠. 아버지, 오빠 모두 말술이지만 주정하는 사람 없었던 것도 감사해요.

그러고 보니 엄마한테는 못된 딸이었네요. 안타까운 거 막 소리질렀지요. 그럴 때 엄마는  "그래, 너 잘났다" 로 끝을 냈지요.

엄마 미안해요.

그런 못된 성질을 어머니께는 내비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1999년 12월 31일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철이 좀 든 것이겠죠.

2018년 3월 18일 어머니 돌아가셨으니 이제 완전 어른이 되서 무거워지겠어요.

그래도 저는 제게 남은 시간을 가볍게 살아보려고 해요. 잘 봐주세요. 엄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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