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최광임
부끄러워 몰래 갔다
이슥한 어둠 탓도 있었지만 바다는 묵묵했다
활어보다 싱싱했던 한때 지나, 까막까막
몇 채 안되는 외등 켜고
폐경기 맞은 여인처럼 주름져 있었다
속살 여리디여린 곳 갈라 물을 들이고
굴삭기, 덤프트럭에 만신창 된 제 상처 핥으며
자꾸자꾸 어둠을 끌어다 덮는 바다다
부려놓은 인연, 몸 깊숙이 근 박아둔 채
풋것 주렁주렁 달고
목놓아 먹일 것도 없는 황량한 들판 되어
백주 대낮이 부끄러운 나다
가끔 진저리치듯 진눈깨비 몰아가고
바다와 나,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짠물에 종기 우려내면 그제서야 낮이 아프지 않을라나
아버지 닮은 누군가 지금도 술을 어둠처럼 마시며
이 거리 저 거리 상한 비늘로 날릴 것인데
바닷가 위뜸, 이제 술기운 가신 채 누워 계실 아버지
맑은 무덤에도 진눈깨비는 내릴 것이었다
괜찮다, 괜찬을 거다.
무덤가 아버지 축축이 젖은 손 뻗어
내 시린 눈 어루어주고 있었다
멀리서 희끄무레하게 흰 파도 밀리다 말다
바다와 나
붉게
몸 들이고 있었다
안면도에서 찍힌 사진이 왔다.
바다를 몸에 들이는 일이 헐어있는 속에 소금물을 들여 더 쓰라리게 하기도 하지만
종내는 숨죽여 너그러이 낫게 하는 일이라는 걸 어슴프레 짐작해 본다.
날아 오르고 싶은 욕망은 언제 멈출까.
아직도 뛰어보는 몸이 갸륵하지 않은가.
손샘의 순간 포착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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