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첫 봄나물 / 고재종

칠부능선 2015. 2. 23. 20:11

 

 

첫 봄나물

고재종

 

 

얼어붙었던 흙이 풀리는 이월 중순

양지바른 비탈 언덕에 눈뜨는 생명 있다.

아직도 메마른 잔디 사이로

하얀색 조그만 꽃을 치운 냉이와

다닥다각 노란색 꽃을 피운 꽃다지와

자주색 동그란 꽃을 층층이 매단 광대나물

저 작은 봄나물들이 첫봄으로 푸르다

저 작은 것들이 지난 가을 싹을 틔워

몇 장의 작은 잎으로 땅에 찰싹 붙어

그 모진 삭품의 겨울을 살아 넘기고

저렇듯 제일 먼저 봄볕을 끌어모은다

저렇듯 제일 먼저 봄처녀 설레게 한다

냉이 꽃다지 광대나물, 그 크기 워낙 작지만

세상의 하많은 것들이 제 큰 키를 꺾여도

작아서 큰 노여움으로 겨울을 딛고

이 땅의 첫봄을 가져오는 위대함의 뿌리들.

 

- 시집『새벽들』(창작과비평사, 1989)

 

 

 

                                

* 당진에서 김샘이 냉이를 뜯어 보냈다. 농사지은 들기름과 들깨가루와...

이건 마트에서 사는 것과 질이 다르다. 선생님의 아픈 무릎을 생각하니 마음이 싸아해진다.

된장과 고추장 양념으로 무쳤는데... 향이 진하다.

모진 삭풍을 몸으로 이겨낸 저 위대함의 뿌리를 허름해진 내 몸에 들였으니 이제,

향긋한 봄기운이 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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