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야 누님
이원규
인도의 스승 스와미 데바난다가 말했다
"산자야! 나의 어린 양, 그대 이름은 산자야니라
그대는 별과 함께 와 바람으로 자유로우리라"
만나자 마자 갈퀴손으로 정수리를 덮으며
단 한 번 불러준 그 이름
그녀의 손금이 바뀌고 맨발의 지도가 그려졌다
용인수도원의 사회복지사 산자야 누님
오늘도 아침 댓바람부터 콧구명을 벌렁거리며
호스피스 병동 2층 복도를 걸어간다
이 세상 어디에도 죽을 곳이 없어
수녀원에서 때를 기다리는 무산자 할머니들
눈을 감고 코로 스윽 둘러보기만 해도 다 보인다
어이구, 저 이쁜 소녀가 물똥을 쌌구마이
냄새만 맡아도 나가 다 안당께
족 작작 쳐묵어, 이놈의 할망구야
시방 똥 싸놓고 머시 부끄러버 두 볼이 다 빨개지능겨?
허허 웃으며 기저귀를 갈아준다
저승길 앞두고 된똥 황금변을 싼 구순의 할머니에게
아이구 이뻐라, 축하혀, 축하헌다고라
할매야, 씨원하제?
그려, 갈 때는 이렇게 확 싸불고 가는 것이여
수녀원의 복지사 산자야 누님이 말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녀, 인생은 냄새여, 똥냄새!
내장이며 마음속까지, 숨 거둘 시간도 다 보인당께"
<시에티카> 201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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