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수직 상승의 꿈 / 노정숙

칠부능선 2023. 5. 2. 21:41

특집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스승

 

수직 상승의 꿈

노정숙

 

 

  어디서 나왔는지 하늘거리는 꽃 사진 아래 쓰인 글에 눈길이 멈췄다. ‘끝까지 해보기 전까지는 늘 불가능해 보인다.’ 활자중독이 맞긴 하다. 침침해진 눈으로도 무엇이건 읽어내려고 애를 쓴다. 사실 내게 가능, 불가능이란 의미가 없다. 좋으면 계속하고 안 좋으면 언제든 그만두면 되는 것이다. 밥벌이가 아닌 일은 자유롭다.

책이 좋아 시작한 글놀이는 소설로 시작했다. 짧게 만나 깊이 알지 못했지만 소설을 합평할 때 맹렬한 분위기에 나는 주눅이 들었다. 집 가까운 곳에서 수필을 만났다. 친근하고 편했는데 수필의 대가이신 운정 선생님은 자꾸 ‘시 같은 수필’을 쓰라고 하신다. 그때부터 시와 수필에 양다리를 걸쳤다.

 

  해독이 필요한 시는 높은 곳에 멀리 있었다. 꼭 시를 쓰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시를 만나는 게 좋았다. 좋은 시가 쉽게 훅 들어온 건 눈빛 맑은 선생님 덕이다. 욕심 없는 선생은 다그치지 않고 시를 가지고 노는 법을 알려준다. 어릴 때 교육은 계단식으로 차근차근 쌓이지만 이미 기본 교육을 마친 사람들은 언젠가 수직 상승을 한다는 거다. 새부리처럼 나온 싹이 햇빛을 향해 고개를 틀 듯 그 말에 희망을 걸었다. 제자리걸음이 길어져도 조바심 같은 건 없다. 그 수직 상승이라는 비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좋은 시를 가까이 두고 즐기면 그만이다. 개안의 기미가 미미한 나이 든 제자를 위해 지어낸 말일 수도 있지만, 그 말의 비의를 믿으며 사반세기를 지나왔다.

  작가는 모름지기 현장에 있어야 한다며 2002년 월드컵 때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시청 앞에 우르르 자리를 잡았고, 노무현대통령 노제 때에는 시청에서 인파에 떠밀려 서울역까지 가기도 했다. 비슷한 생각의 동인들과 지금껏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본다. 절반은 착실하게 시를 써 와서 합평을 한다. 가끔 감탄하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절반은 날라리다. 숙제가 코앞에 다가와야 겨우 시를 쓰고,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물으며 경조사를 챙기고 맛난 식사를 즐긴다. 때로 선생님도 “제 아내는요~”하며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 ‘우리 집사람은~’, ‘우리 마누라는~’ 이런 흔히 듣던 서두가 아니라서 좋다.

  오래전에 문학행사에서 만난 사모님이 회원들 얼굴을 보고 이름을 다 맞췄다. 매일 함께 산책하며 나눈 대화에서 상상한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대화가 통하는 부부는 복되다. 뼛속까지 고독해야 시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외로워야 할 것 같은 괜한 걱정이 없어졌다.

  작년에 선생님의 아픈 손가락인 『붉은산 검은피』가 33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이 시집으로 인해 여러 명이 감옥에 가고, 선생님도 수감생활을 했다. 판매 금지되었던 시집을 새로 출간했으니 감격이다. 이 장편서사시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이후 화순탄광사건까지가 배경이다. 힘없는 민초들의 서럽고 억울한 죽음들을 대대로 머슴이던 석이네 가족의 입으로 말한다. 우리말이 살아 꿈틀대며,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무한다. 역사의 진실을 전한 시편이 ‘불온서적’이었던 시절을 건너왔다.

  그동안 선생님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래전 고은 시인이 특강에서 “오봉옥 시인은 내 형님”이라고 소개를 했다. 행사 뒤풀이에서도 조용조용했고, 화낼 일이 생겼을 때도 그저 침묵한다. 멀리서 만나도 화들짝 반가운 표정을 짓지 못하고 미소만 지을 뿐이다. 도무지 흥분하는 법이 없다. 한때 격렬했던 시대 소명에도 날카로움을 버렸다. 벼린 것이 시간에 굴러굴러 둥글어졌다. 창작의 고통을 놀이에 편입시킨 듯 평온하다.

  공부가 그리운 날이면 『오봉옥의 서정주 다시 읽기』를 다시 읽고, 마음이 스산할 때는 산문집 『난 월급받는 시인을 꿈꾼다』를 찾아본다. 글이 막히면 시집 『노랑』 『섯』을 펼친다. 서늘하고도 따뜻한 시들이 단방에 다가온다. ‘어려운 건 쉽게 쓰고, 쉬운 건 재미있게 쓰는’ 고수의 작법을 만난다. 창작은 고통스럽지만 그 결과는 격렬한 희열이라고 했다. 그 희열에 동참하기 위해, 선생님이 권해준 『조선말대사전1,2,3』 『겨레말 용례사전』 『우리말갈래서전』 등을 장만하고 든든했다.

 

  한때 창작열에 뜨거웠던 시간을 지나온 건 선생님 덕분이다. 문학을 이야기하는 게 행복하다는 선생님은 내가 어떤 비판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칭찬으로 여겼다. 이천 년 초반에 선생님의 권유로 수필 강의를 했다. 작은 잡지사에서 모집한 문학교실에서 선생님은 시를 가르치고, 내게 수필을 맡겼다. 그 후, 백일장 산문 심사와 선생님의 대타 강의도 경험했다. 나름 치열했던 시간이다.

  가르치는 일은 더 많이 배우는 일이다. 돌아보니 이런 체험들이 나를 키우는 힘이 되었다. 스승 아래 나는 백년학생이다. 흉내 내며 따라갈 스승이 있어서 다행이다. 말로 전달되는 부분이 어느 만큼일까 생각한다. 빙산의 일각처럼 많은 것을 장착해야 겨우 일부를 드러내는 게 말이다. 말은 늘 미진하다. 그래서 나는 입을 여는 것보다 눈과 귀를 여는 게 더 좋다.

  3월, 횡성의 한적한 스키장에 갔다. 마지막 눈 위에서 두 발을 모으고 있는 힘을 다해서 수직 상승을 했다. 무거운 몸을 가벼운 정신으로 점프, 점프하며 많이 웃었다. 어쨌거나 끝까지 해보는 건 내 지병이다.

 

<한국산문> 5월호 (통권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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