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시절
류근
10년씩 배경을 뛰어넘는 드라마처럼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네
숙취에 떠밀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한 국자 비워져 버린 간밤의 기억처럼
시간이 그렇게 큰 걸음으로
풍덩풍덩 달려가 줬으면 좋겠네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미분의 시간들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르는 길이 천축보다 멀고
밤마다 시간이 떨어뜨린 눈썹이
죽은 모래의 뼛조각으로 떠밀려 가네
한 시절 건너가는 일이 거미줄을 밟고 가듯
허공에 발자국 새기는 일처럼 아득하여서
내 절망은 적분 같은 것이네 죽는 날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
시간이 쪼아대는 부리를 견디며
살아남는 것만이 희망인 목숨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
건너가는 것만이 구원인 목숨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두어 달쯤 앞당겨 잘못 찢어낸 달력처럼
짐짓 빈 정류장을 지나쳐 버리는 버스처럼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네
세단뛰기 하는 육상선수처럼
숨을 몰아 쿵쿵쿵,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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