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코로나 학번 / 류근

칠부능선 2020. 12. 31. 16:54

코로나 학번

류근

 

 

재수를 하고서야 간신히 대학에 입학한 아들

아침마다 갈 곳이 없다

학교는 분명 거기쯤 있을 텐데

갈 데가 없다

입학식에 입으려고 작년부터 준비해 둔 양복

요즘 누가 입학식에 그런 걸 입느냐며

온갖 놀림에도 아랑곳없이 다려두었던 그 양복

옷장에서 한 번도 나온 적 없다

입학식도 없이 개강 첫날의 촌스러움도 없이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는 동안

학교 한 번 못 가보고도 대학생은 대학생

모니터 속 교수는 아들의 얼굴을 모르고

아들은 학교 가는 버스 노선을 모르고

나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들의 정체를 모르고

학교는 언제 문이 열릴지 모르고

바리러스는 얼제 사람을 지나칠지 모르고

모르고 모르고 온통 모르고

이 자욱한 몽롱의 담장 너머 캠퍼스엔 꽃이 피고

여전히 등록금 고지서는 펄럭이고

아들은 대학 건너의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아핌마다 갈 곳 없는 대학생 아들 앞에서

엉거주춤 시선을 잃은 나에게

확진자 숫자는 괜히 화를 내는 늙은 교수처럼

중얼중얼 자꾸만 무언가를 물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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