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빗방울, 빗방울들 / 나희덕

칠부능선 2017. 8. 30. 10:11


 

빗방울, 빗방울들
나희덕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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