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청춘과 꼰대

칠부능선 2017. 3. 26. 20:00

 

청춘과 꼰대

  노정숙

 

 

오래 전, 셋째오빠는 아버지가 없을 때 아버지를 ‘꼰대’라고 칭했다. 어렸던 나는 왠지 면구스러웠고 나이가 들면 모두 꼰대가 되는 줄 알았다.

문화예술비평지『창』에서 꼰대마인드가 나라를 망쳤다는 비평문을 읽으며 언짢은 기분이 드는 걸 보니 나도 꼰대가 되었나보다.

불쾌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많다. 꼰대의 특징은 권위를 추종하고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거리를 무시하고 상대가 요구하지 않아도 마구

조언을 날린다. 체험으로 알아낸 지혜는 확고하여 누군가 토를 달면 불쾌해 하며, 자신의 연륜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듯 행동한다.

지난 두 계절 동안 우리 사회는 극단을 치달렸다.

친구끼리도 마음 상하는 일이 많았다. 한쪽은 이념에 치우쳐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며 답답해하고,

또 다른 쪽은 변화를 두려워하며 기득권을 놓지 못하는 안일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서로를 향한 과격하고 원색적인 말펀치와 글망치는 분명 꼰대짓이었다.

우리의 민주주의 이력은 젊다. 양담배를 피운다고 감옥에 가고, 미니스커트 장발을 단속받고, 예술과 언론이 검열 당하고 통제되고,

부정선거도 묻히는 시간을 건너왔다. 세상은 빠르게 좋아져서, 우리 민주나무는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둥치가 굵어지기도 전에 악충이 극성이다. 세월에 맞는 관록이 붙기 전에 지독한 때가 끼었다.

굳어버린 때를 벗기기 위해 필요한 비는 우리의 바람과 상관없이 폭우가 되었다. 삽시간에 사방이 어두워졌다.

촛불을 들고 나간 이들이나 태극기를 들고 나간 그들도 바르고 맑은 사회,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라는 건 같을 것이다.

기대하지 않던 사람도 바른 말과 행동을 하면 박수를 보내야 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불의와 손잡으면 비판해야 한다.

믿음이 무너지면 바뀌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골수에 박힌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걸 ‘지조론’에 빗대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난감했다.

‘염결공정하고 청백강의한 지사’ 지금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를 기만하지 않고, 슬프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지조 없이 살기로 했다.

‘말랑말랑한 노인’이 되는 게 내 꿈이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이쪽저쪽 좋은 것을 찾아 팔랑팔랑 귀를 세우고,

해본 것이 많아서 어떤 일에도 너그러우며, 새로운 것에는 눈을 반짝이는 노인이 되고 싶다.

샤무엘 울만은 청춘이 인생의 어느 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했다. 꼰대도 마찬가지다.

20대도 꼰대가 될 수 있고, 80대라도 청춘으로 살 수 있다.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타성에 젖지 않고, 긴장감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나 청춘이다. 젊었어도 고루한 생각에 빠지고

희망을 놓는다면, 그 순간 꼰대가 된다.

“예전에 내가 말이야, 요즘 애들은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이 많아진 셋째오빠는 그야말로 꼰대가 다 되었다.

너무 짧은 스커트를 입고 나가는 딸에게 ‘옷이 그게 뭐니’ 하려다 나는 겨우 말을 삼킨다.

 

<월간에세이> 2017년 4월호 /통권 360

 

 

 

 

         

 

 

'수필. 시 - 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르고 푸른 몰타  (0) 2017.05.19
[스크랩] 몸 - 노정숙  (0) 2017.04.02
아무래도 나는  (0) 2017.03.08
술, 여럿이 혼자서  (0) 2017.02.23
젖은 속옷  (0) 2017.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