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그 사람, 윤택수

칠부능선 2007. 11. 20. 11:45

 

       그 사람, 윤택수

 

 


  김서령이 쓴 ‘그에게 열광하다’를 읽고 어찌 윤택수를 찾아보지 않겠는가. 

  윤택수가 기억하는 유소년 시절의 풍경은 우리 산과 들에 지천인 숨 붙어 있는 모든 것과  관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절절하다. 쉰다랑, 은굴, 가맛골, 소라실 - 새뜻한 우리말이 때굴거리고, 샤머니즘과 유교와 기독교와 진화론교가 사이좋게 말다툼을 하고 있는 새미래라는 마을이 바짝 다가온다.

 

  까마중이나 수숫대, 흰빛 반점이 찍힌 선홍색 열매 뽀리똥을 주전부리 삼던 배고프던 시절, 까치도 안 먹는 까치밥을 불에 그을린 다음 톡톡 털어 좁쌀보다 더 잔 씨알을 먹던 구접스러움마저 정겹다. 오디와 찔레순과 장다리 꽃대궁과 삘기와 까마귀머루와 올미 따위를 먹었던 그들은 그것들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의 원기를 취했던 것이리라.

  별별 꽃과 나무가 다 들어있는 그의 마음속 꽃첩과 나무첩을 엿보는 것이야말로 향그럽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좋아하는 그를 보며 우리도 ‘작은 꽃이고 나무이며 쪼그맣고 부질없는 무당벌레’라는 각성을 건진다.


  외가에 다녀오는 길에

  “어머니. 왜 길이 가까워졌지요?”

  “가까워지다니?”

  “어제 이 길은 올 때는 까마득하게 멀고 지루했었는데, 오늘은 반도 안 되는 것 같어요.”

  “첫길은 멀고 힘든 것이란다. 첫길이 아니라도 돌아오는 길은 한결 수월한 법이고.”

   어머니는 나의 질문을 한 번도 비껴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질문에 되는 대로 건성건성    대꾸한다거나, 쓸데없는 것 묻지 말고 나가 놀기나 하라거나, 스스로 모르는 것을 꾸며서 대답한다거   나 하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모든 질문에 대해서 성의껏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어머니」중에서


  매사에 경우 바르고 꿋꿋했던 어머니, 강인한 어머니의 기질조차도 안쓰럽게 기억되는 것이 아들의 마음인가보다. 그는 어머니로 인해 일찍 세상의 이치를 알아버렸다. 삶에는 연습이 없으며 인생이란 다만 멀고 험한 첫길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일회성의 경건함을 너무  일찍 알아차렸다.

 

  그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피할 수 없는 열등감을 무기로 삼아, 수정처럼 맑고 진흙처럼 다정한 사람이 되기 틀렸다고 자조하며, 자기의 글에 맞아 쓰러질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미리 염려했다.

  자신의 글에 운율이 지긋지긋해지고, 지나치게 많은 부사에 걸리고, 의존명사와 추측형 어미와 감탄격 조사에 괴로워했으며 번역 문체에 이르러서는 절망하면서도, 그는 지나치지 않는 말을 위해 마음의 모서리를 궁굴리며 스스로 담금질했다. 언제고 깨끗한 산문을 쓰고 말리라며 감각을 벼리고 벼렸다.

 

  스스로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을 구분하는 정도의 눈썰미만을 갖췄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장 주네의 석고주걱 같은 문장을 유리섬유처럼 쨍그랑거리는 우리말 문어체로 다듬어낸 『도둑일기』의 번역자에 대한 예찬을 읽다보면, 그의 폭넓은 독서 편력을 짐작하게 된다.

 

  아놀드 토인비가『역사의 연구』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가름하면서, 중국 문명과 일본 문명을 특색으로 변별해 냈을 때에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 문명은 언급이 없었다. 그 양 축의 아류 정도로 몰았었는지…. 시간이 지나고 동아시아 문명이 주류에서 제외되었던 한국 문명이라는 항목이 개정판에서 설정해 놓았다는 사실 앞에서 겨우 한숨을 내뿜는 우리의 심리를 열등감의 한 켜로 말하고 있다.

 

  초판에서 명을 다하는 좋은 책을 골라서 열심히 사고, 많은 책을 무섭게 읽어 내렸다. 둘 곳이 없는 훔친 책, 제 자리에 가져다 놓기가 더 어려운 훔친 책, 제때 반납하지 못해 천덕꾸러기가 된 빌린 책. 이 책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아 속상해 하는 표정을 함께 느끼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는 제 몫을 다한 후 내지르는 책들의 탄성도 함께 듣는다.

 

  ‘… 나의 희망은 카프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루쉰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박경리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윤택수 만큼만 쓰고 싶다. 아니 어쩌면 윤택수가 카프카보다 더 진지하고 자기완성적인 글을 썼다고 나는 생각한다.’

                                                                             - 「김서령의 그에게 열광하다」 중에서


  이보다 더한 극찬이 있으랴. 출판물의 홍수 속에서 눈 밝은 사람만이 열광에 도달할 수 있다. 실은 윤택수를 오래 전에 만났으나 그의 빛나는 문장에 사로잡히지 못했다. 내 눈은 어두웠다.  

 

  ‘배가 고픕니다. 좋은 밥 먹고 좋은 생각 좋은 일 하겠습니다. 내 밥을 남들에게 노느기도 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꼭.’ 그의 산문「밥」의 끝부분이다.

  다짐은 늘 허황하다. 열심을 다짐한 그의 삶은 너무 짧았다. 그는 자신의 밥을 나눌 식솔도 만들지 못하고 황급히 떠났다. 우리는 죽은 자에게 너그럽다. 더욱이 요절이라는 말에는 천재성의 기미까지 따라붙는다.

 

  작가만 요절하는 게 아니다. 요절하는 글이 더 많다. 짧은 삶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은 못 다한 사랑의 대상으로 격상되는 것을 차치하고도, 나도 산문이란 이래야 한다는 모델을, 그 도달점을 윤택수에게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는 정규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생도 하고, 잡지사, 출판사 편집장이 되기도 했다. 소설을 쓰겠다고 직장을 버리고, 노동자의 생활도 해보고, 원양 어선의 선원이 되기도 했다. 서른아홉에 학원 강사를 하다가 쓰러졌다. 몸도 마음도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원초적 노마드였다. 그는 박물지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협궤열차와 강릉 원주 강원도 어디쯤이나 김화나  창진 어느 곳,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망루를 자주 노래했다.

 

  그는 처음부터 지리멸렬한 문단에 뜻을 두지 않았지만 좋은 작품에 대한 열망으로 치열했다. ‘휠더린의 웅혼함과 랭보의 자유 백석의 염결함 김수영의 반골 기형도의 요절 없이 어찌 시인이 되겠느냐’고 읊던 그는 자신의 요절을 예감 했을까.

 

  그가 급변하는 시대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자신의 불운과 남의 성취에 대해, 인간사 고르지 못함에 대하여 체념하는 허무주의를 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산으로 향하는 그의 쓸쓸한 발걸음을 좇는다.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을 사랑하고 추구를 추구하는 자폐의 회로, 그 퇴행의 기미에도 불구하고 아득하고 높고 슬픈 선의와 자제에 나는 기꺼이 동참 한다.

 

  요절한 윤택수는 다시 볼 수 없지만 시집과 산문집으로 남은 그의 조촐한 유족은 만수曼壽를 누릴 듯하다. 새를 쏘러 숲에 든 그는 ‘가슴이 약한 예각의 새’에게 이마를 맞으며, 느릿느릿 숲을 옮아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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