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노정숙
밴프 국립공원에 사는 곰은
겨울잠을 자기 전에 나무 위에 올라
제 몸을 떨어뜨린다
쿵, 쿵, 쿵, 쿵
제 몸에 쌓인 지방층을 확인해야
겨울을 나는 회색곰
손자가 온 날
아래층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삽시에 지진의 근원지가 되었다
제 몸에 쌓인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루를 사는 아이들
우리집 위층에 사는 회색곰은
무얼 위해 제 몸을 떨어뜨리나
낮밤 없이 계절도 없이
지진이 나도록 쿵쿵쿵
가슴
노정숙
봉긋 솟아오른 봉오리
젖 대신 실리콘을 담고 있는
흔들리지 않는 어여쁜 용기
젖통을 과감히 포기해버린
저 황홀한 결단
걱정과 희망을 버무려
꾹꾹 눌러 담은
젖밖에 없어 젖을 다 내주고
늘어진 쭉정이 덴가슴으로 사는
이 황홀한 견딤
어쨌거나
모든 가슴은 위대하다
<문학의오늘> 2021 여름호 통권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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